• 최종편집 2026-02-0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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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는 우리 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17세기 존 로크(1632-1704)가 종교의 자유를 말한 첫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앞서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교의 자유를 주장하고 관용을 요구한 바 있고, 17세기에도 존 로크보다 앞서 종교의 자유를 말한 이가 있었다. 그가 청교도 지도자였던 로저 윌리암스(Roger Williams, 1603-1683)였다. 우리 시대 그가 주목을 받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의 자유를 말할 때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첫째는 신교(信敎)의 자유를 말한다. 신앙의 자유라는 말인데 어떤 종교를 선택하던지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행위의 자유인데, 내가 믿는바 종교적 요구를 실행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전도나 선교, 주일학교 교육 등은 종교행위의 자유에 속한다. 이런 종교의 자유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제시하고 실행했던 인물이 로저 윌리암스였다.

 

1603년 12월 21일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로저 윌리암스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 교육을 받고, 목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영국 국교회 목사로 활동하려고 했으나, 당시 교회 제도와 체제가 본래적 교회로부터에 이탈했다고 보아 청교도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청교도, 특히 분리파 청교도들의 교회가 보다 순수한 교회라고 여겼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어려운 현실이었고, 또 자신의 양심을 따라 믿고 말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1631년 영국을 떠나 뉴 잉글랜드로 향했고,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로 이주했다. 이곳은 청교도들이 성경적인 공동체를 세우기위해 건설한 식민지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식민지 당국이 종교적 정통성을 강요하는 모습에 실망하여 갈등을 빚었다. 매사추세츠 식민지의 교회들은비록 영국을 떠나왔으나 여전히 영국국교회와 완전하게 단절되지 못한 상태였고 그것이 그에게는 불만이었다. 사실 로저 윌리암스는 완고하리만큼 분리주의적 성향이 깊은 인물이었기에 배타적 성향이 없지 않았다. 그는 본래 분리파 청교도였으나 침례교도로 전행했다. 그는 매사추세츠 식민지에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와 국가가 상호협력하여 하나의 기독교 사회를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으나, 윌리암스는 교회와 국가가 한 몸처럼 엮이는 구조는 신앙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믿었고, 국가의 역할을 선명하게 제한했다. 어떤 종교, 어떤 예배, 어떤 교파에 속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가 간섭할 수 없는 영역으로 보았다. 두 번째는 토지문제에 의의를 제기했다. 영국인들이 왕의 특허권을 근거로 원주민의 땅을 무상으로 차지했는데, 윌리엄스는 원주민들에게 정당한 대가 없이 땅을 빼앗은 것은 불의라고 보았다. 그는 원주민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주장했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치-경제적인 문제가 포함된 민감한 문제였다. 이런 문제로 매사추세츠 정부는 1635년 10월 로저 윌리암스를 추방했다.

 

추방된 로저 위리암스는 원주민공동체와 교류하며 도움을 입었고, 원주민들에게 정당하게 땅을 매입하여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했는데, 이곳이 바로 프로비던스(Providence)였다. 자신처럼 양심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 기존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가 세워졌다고 믿었다. 프로비던스는 후에 주변 지역과 함께 묶여 로드 아일랜드주로 발전했다. 그런데 프로비던스에서는 시민권(국가)과 종교는 엄격하게 분리되었고, 어떤 신앙, 어떤 종파에 속하든 속하지 않던 시민권을 누릴 수 있었고, 공공의 권리를 보장했다. 이런 ‘종교의 자유’는 당시 어떤 유럽 국가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었다. 로저 윌리암스가 말한 종교의 자유란 다음의 몇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째는 강제의 부재였다. 아무리 옳은 진리라고 할지라도 이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둘째, 양심의 자유를 인정했다. 신학이니 사상이나 이념을 달리해도 그 개인의 양심을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다. 셋째,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의 분리를 주장했다. 많은 이들은 국가가 교회를 도와주는 보호막이라고 여겼으나 윌리엄스는 국가가 교회를 도와줄 때 거기에는 언제나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보았다. 또 교회가 국가의 도움에 길들여지면 예언자적 선포를 불가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교회가 국가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둘 때 순수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로저 윌리암스는 존 로크 보다 앞서 근대적 의미의 종교의 자유를 말하고 실행했던 선구자였다. 그의 사상은 존 로크와 같은 철학자에게, 그리고 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 건국 주역들이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그가 도로를 만들 때 동물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첫 사람이었다. 17세기에 벌써 그런 주장을 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미국에서 일 년에 1억 마리의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처 죽고, 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Road kill) 동물의 수가 연간 3억6천5백마리에 달한다는 추정치를 볼 때 로저 윌리암스는 앞을 내다보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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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로저 윌리암스와 종교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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