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화 목사님의 글 가운데 이런 문장이 자주 회자됩니다. “목수는 나무가 최고라고 하고, 석수는 돌이 최고라 하지만, 목사는 사람이 최고라 하고 싶습니다.”
보수적 신학 전통을 가진 고신교회 정돈화 목사님의 이 고백은 처음 들을 때는 다소 의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해 볼수록, 이 문장은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 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일의 성취, 결과, 효율, 성과…. 그러나 신앙의 자리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나고 있는가?”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아무리 정당한 주장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사람이 무너지고 상처 입는다면 우리는 멈춰 서야 합니다.
2026년 우리 교회 청지기 세미나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이런 인상 깊은 말을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잇는 세로 나무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로 나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로 나무는 분명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로 나무가 빠지면 십자가는 사람을 때리는 몽둥이가 되고 맙니다.”
이 말은 오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믿음의 고백이 아무리 분명해 보여도, 사람을 향한 사랑과 책임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믿음은 결코 수직으로만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믿음은 반드시 이웃을 향해 수평으로 뻗어가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는 사람을 너무 가볍게 대하는 모습들이 적지 않습니다. 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평가는 점점 빠르고 단정적이 됩니다. 충분히 알기도 전에 판단하고, 이해하기보다 규정하며, 대화하기보다 낙인을 찍는 일이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쉽게 상처 입는 것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가수 안치환 씨는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라고 노래했습니다. 배우 김혜자 권사님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을 통해,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고백들은 단순히 감성적인 문장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향한 깊은 통찰로 들립니다.
성경은 왜 우리가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에 대해 더욱 분명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되,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가장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명령 역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나타나셨지만, 제자들 중 일부는 여전히 이 사실을 의심했습니다(마 28:17). 그렇지만 주님은 실수 많고, 믿음이 부족했던 이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일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나의 옳음에 앞서 사랑을 먼저 선택하고 있는가?”
“내 말과 태도가 누군가를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상처를 입히고 있는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신앙은 제도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봉사, 말과 선택의 목적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람을 살리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그 사람 속에는 바로 ‘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대 한가운데서, 신앙을 가진 한 사람으로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최고라 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