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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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에 늦게 신학을 시작해 시골교회를 담임하게 된 어느 날,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문안했다. 평소에는 당일로 다녀오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어머니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늦가을의 으스스한 한기 속에 잠이 오지 않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괜스레 어머니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야야, 노인 냄새 난다.” 뒤돌아 눕는 어머니를 다시 돌려 눕히면서 “엄마, 젖 먹고 싶다.”고 장난스럽게 말하자, “아이고 망측해라, 니가 어린애가?” 하며 웃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저고리 섶을 살며시 헤치고, 앙상한 몸에 말라붙은 젖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젖을 떼고 37년 만에 만져보는 엄마의 젖이었다. “아이구 야야, 애미 젖 안 나온다. 왜 이러노?” 하며 만류하시는 어머니.... 그러나 나는 “엄마… 젖 먹자”라고 말하며 젖꼭지를 입에 넣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며 헉 하고 울음이 터졌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내 머리를 아기 머리 쓰다듬듯 어루만지셨다. 어머니도 울고 계심을 느낀 나는 한참을 울었다. “이 젖꼭지를 통해 우리 5남매가 살았구나.” 그날 이후 내 목회의 기본 철학은 ‘모심목회(母心牧會)’가 되었다.

강산이 네 번 바뀐 오늘까지도 그날의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농어촌의 작은 교회에서부터 도시의 대형교회, 개척교회에 이르기까지 다니며 ‘엄마 젖꼭지 목회철학’으로 말씀 사경회를 인도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젖꼭지다. 성도는 목사를 통해 신령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그래서 목사는 성도에게 풍성한 젖을 먹이기 위해 온갖 영적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일마다 성도는 하나님의 젖꼭지인 목사를 통해 하늘의 양식을 공급받는다. 영적으로 배가 부르면 그 목회 현장은 푸른 초장이 된다. 엄마의 마음이 아기의 환경이 되듯, 담임목사의 마음은 교회의 환경이 된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교회든,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교회든 그 중심에는 목사의 마음이 있다. 그래서 다시 ‘엄마의 젖꼭지’를 묵상하게 된다.

 

아기를 키우다 보면 엄마는 젖꼭지를 깨물릴 때가 있다. 첫째,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아기는 젖꼭지를 문다. 둘째, 이가 날 무렵 잇몸이 근질거릴 때도 젖꼭지를 문다. 엄마의 반응도 두 가지다. 하나는 순간적으로 아기의 엉덩이를 때리며 “왜 깨무노” 하고 화를 내는 것. 그러면 아기는 울음을 터뜨린다. 다른 하나는 젖이 안 나와 아기가 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기와 눈을 맞추며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기는 스르르 잠이 든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젖꼭지를 깨물리지 않으려면 젖이 풍성해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젖이 잘 돌도록 음식을 챙겨 먹는다. 또 하나, 이가 날 무렵의 아기는 배가 고플 때는 젖을 깨물지 않는다. 그러나 배가 어느 정도 부르고 엄마가 자신을 보지 않고 다른 데 시선을 두면, 관심을 받고 싶어 젖꼭지를 문다.

그래서 이 시기의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는 엄마가 눈을 맞추고 관심을 주면 젖꼭지를 깨물지 않는다.

목회 현장도 이와 같다. 목사의 마음이 편안하고 생활이 안정된 교회는 은혜와 감사가 넘친다. 반대로 목사의 마음이 불안하고 지친 교회는 영적 기갈과 갈등이 반복된다. 젖이 나오지 않아 젖꼭지를 깨무는 교인, 관심을 받고 싶어 젖꼭지를 깨무는 교인…오늘의 교회 현실이다. “좋은 엄마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지치면 쉬고, 힘들면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엄마다.”라는 말처럼 교회도 완벽한 목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젖을 풍성히 준비하고, 젖꼭지를 물리는 순간마다 아기와 눈을 맞추듯 성도의 상황을 살피고 공감하는 목사를 원한다. 목사도 사람이기에 지칠 때는 쉼이 필요하다. 그럴 때 교회의 도움을 겸손히 요청할 수 있어야 하고, 교회는 그 마음을 헤아릴 때 푸른 초장이 된다.

 

요즘 AI로 설교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젊은이들은 ‘라떼’라며 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묻고 싶다. 거기서 영양가 있는 젖이 생성될 수 있을까? 설교는 글쓰기의 문제가 아니다. 말씀 선포의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AI는 생명이 없다. 감정이 없다. 사랑이 없다. 영적 경험이 없다. 문장을 나열하는 능력은 AI가 더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말씀 앞에서 떨리는 마음, 성도를 향한 사랑, 골방에서 기도하며 씨름하는 시간,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자료 정리, 배경 분석, 예화 적용, 표현 다듬기 등은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설교 전체를 AI에 의존한다면 생명력 있는 메시지는 나올 수 없다. 말씀은 살아 있어야 하고,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지고한 수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자의 삶과 기도, 그리고 경험된 영적 체험이 담겨 있어야 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젖꼭지다. 풍성한 젖을 위해 자기 자신과의 영적 씨름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교인은 젖꼭지를 깨물어서는 안 된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깨물리지 않는 젖꼭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설교자는 언어라는 붓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그림처럼 그려 성도들에게 보여주는 거룩한 화가이다. 성도는 그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되고, 깨닫고 회개하며 결단하게 된다. 설교의 교과서는 성경이다. 다양한 색채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듯,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다양한 내용과 예화, 경험은 참고 도서일 뿐이다. AI도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설교의 도구일 뿐이다. 주체와 객체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시 엄마의 젖꼭지를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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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엄마의 젖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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