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6(금)
 

박남규 목사.jpg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목회자로서 걱정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왜 교계와 교회 공동체에는 비난과 정죄와 다툼과 분열이 많은지? 한동안 우리는 이념과 정치에 대한 개인적 나침반을 가지고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편을 가르고, 아주 어설픈 백정의 칼날로 서로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하고 정죄했다. 지금도 그 마녀사냥과 같은 정죄와 비난은 멈추지 않고 있다. 교회 밖에서 그리고 불신자들이 가하는 비난과 박해와 비판도 감당하기 힘이 드는데, 힘을 합쳐서 함께 대응하여도 현실의 상황을 타개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비전을 이루기가 버거운데,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난과 정죄와 분열은 우리에게 더 큰 아픔과 좌절을 가져다준다. 한국 교계와 교단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부산 교계를 둘러보아도, 정죄와 분열과 싸움의 도는 멈출 생각이 없이 오히려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하고 있다. 모두가 다 의인이고, 정의의 심판자다.

 

옛말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는데 오늘 우리 교계와 교회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죄와 비난의 목소리는 더 높아지고, 부흥과 성숙을 위한 흥정은 사라져 간다. 기독 언론들과 미디어에 실리는 뉴스와 교계의 소식 그리고 유튜브에 하루가 멀다 않고 업로드되는 각종의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주장은 교회와 복음 전파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데 거의, 아니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회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교회와 기독교는 결코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사상이나 공동체로 인식되게 했다. 외부에서 볼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비난과 다툼으로 인해 기독교는 이미 존재하지 말아야 할 사회의 악이 되었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과 손으로 그렇게 만들었다. 존재하는, 일어난, 존재하지 않는, 일어나지도 않는 일들을 추측과 상상으로 혹은 사실에 완벽함을 더하여 더욱 적나라하게 교회의 문제와 고통을 기사화했다.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교회나 교계에 다툼과 분규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거의 불문율처럼 ‘교사모’(교회를 사랑하는 모임)와 ‘교개위’(교회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진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죽기를 각오하고, 순교의 재물 되기까지 투쟁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서로를 악마화한다. 기도와 성경 말씀까지도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도구화한다. 서로의 비난으로 말미암아 한쪽은 사탄의 자식이 되고, 한쪽은 마귀의 노예가 된다. 하나님의 정의를 외치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헌신짝처럼 버린다. 악마를 잡기 위해서는 더 큰 악마가 되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괴물이라고 정의한 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그들 자신은 더 큰 괴물이 되어 간다.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신들은 모른다. 정말 그들이 가진 생각과 행동의 중심이 하나님일까?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감당하는 것일까? 정죄와 비난과 투쟁의 산물로, 믿음이 연약한 어떤 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아직 영글지 않은 믿음을 가진 어떤 이들은 아예 예수를 떠난다. 이들의 영혼에 대해 책임지는 투쟁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영혼인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아버지는 아직도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교회는 만물 위에 존재하는 예수님의 지체들이라고.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으나 너희 맘대로 뽑지 말고 알곡을 위해 하나님의 심판 때까지 참으라고, 한 가지만이라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접근하고 깊이 묵상한다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타종교에는 문제나 비리나 가라지가 없을까? 왜 그들은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노출하지 않고 힘들고 어렵지만, 자정의 노력과 개혁의 일들을 이루어갈까? 왜 그들은 노출된 공간에서 서로를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을까? 아마도 서로가 그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것을 인식하거나, 그들이 가진 종교의 아름다움과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 않거나, 이미 타락한 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사욕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묵인하거나, 근본적으로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위한 그 무엇이 처음부터 없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가 행하고 있는 비난과 정죄와 다툼과 분열은 정말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신이 하나님은 아닐까?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목회자칼럼]누구를, 무엇을 위한 투쟁인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