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항준
주연 : 유해진(엄홍도), 박지훈(이홍위), 유지태(한명회), 전미도(매화)
한 번씩 대정향교를 가곤 한다. 대정향교 한 쪽 동재에는 추사 김정희가 써 준 현판이 걸려 있다. 疑問堂(의문당), 의심이 생기면 질문을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1846년 대정향교의 훈장이었던 강사공이 유배를 와 있던 김정희에게 부탁해서 써 준 현판이다. 추사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니 학문에 있어 경지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강사공은 추사에게 여러 번 강의를 부탁했었고 추사는 이에 응했다. 당시 추사에게 글을 배운 제자들은 강사공· 박혜백·허숙 ·이시형 ·김여추 ·이한우 ·김구오 ·강도순· 강기석· 김좌겸· 홍석호 등이 있다. 추사의 상황은 비록 유배중이었으나,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학자에게 글을 배울 수 있었으니 최고의 혜택을 누린 셈이다. 유배자들은 그 지역의 학문 발전에 직간접적 역할을 했다.
1453년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후원자였던 김종서, 황보인등을 제거하고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그는 왕으로 등극하고 선왕이자 조카인 단종을 상왕으로 몰아냈다. 이후 단종을 복위하려는 움직임이 집현전 학자 출신 신하들에게서 있었고, 발각되어 성삼문, 박팽년 등이 고문 끝에 단죄가 된다. 세조는 이를 문제 삼아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보낸다.
한편 영월의 한 촌락인 광천골, 먹고 살기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는 부락민들이 있다. 이 마을의 촌장인 엄흥도는 고민이 많다. 부락민들을 돌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 비탈길에 넘어져 정신을 잃었다. 한참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이웃 산골마을이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이 마을에는 잔치가 벌어졌다. 흰 쌀밥에 고깃국에 닭요리가 한 상 가득하다. 아니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정신을 차린 엄흥도는 촌장에게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촌장의 말인즉 얼마 전 고관대작이던 양반이 이 마을로 유배를 왔는데 처음에는 양반 행세를 해서 귀찮고 성가신 존재였지만, 점차 이 양반을 찾아 많은 선비들이 오더라는 것이다. 양 손에 각종 선물 보따리를 가득 들고서. 유배 중인 양반이 혼자먹을 수 없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고, 심심하니 아이들을 불러 글공부를 가르쳤다는 게다. 그래서 마을이 활기차고 풍성해 졌다고 한다.
엄흥도의 눈이 반짝인다. 그는 즉시 영월 관아로 가서 사또를 찾아 뵙고 다짜고짜 다음 유배지는 광천골로 해 달라고 요청한다. 물이 굽이 치는 청령포가 있어서 유배지로 딱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유배자를 잘 돌보고 감시할 것이라고 약조한다. 얼마 후 엄흥도의 소원대로 광천골 청령포에 한 사람이 유배를 오게 되었다. 엄흥도는 옳거니 하면서 그를 반긴다. 하지만 엄흥도의 예상과 달리 왠 젊은이가 오게 되었고, 알고 보니 그는 폐위된 임금이다. 게다가 한명회라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양반이 엄흥도에게 경고를 한다. 유배자를 잘못 감시하면 마을 전체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망연자실한 엄흥도, 일이 꼬여도 그렇지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면서 한탄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해야 하니, 엄흥도는 유배된 단종에게 식사 수발을 하기 위해 드나들 수밖에 없다. 단종 역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예상치도 못한 유배 생활을 하게 되니 삶의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염없이 누워있고 하늘만 쳐다보기 일쑤다.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만 지내는 단종을 보는 엄흥도의 심정도 타들어간다. 만에 하나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자기 목숨이 날아갈 판이다. 엄흥도는 노산군의 방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젠장, 고관대작을 바랬더니 폐위된 왕이 왠 말인가? 이러다 나도 가족들도 다 죽게 생겼구나”
엄흥도의 불평을 들은 단종의 마음도 복잡하다. 왕으로 있을 때도 백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는데, 유배되어 와서도 백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단종은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밥상을 맞고, 마을 나들이도 하기 시작한다. 마을 아이들에게 글도 가르친다. 얼마 후 단종이 유배된 사실이 소문을 타고 나더니, 전국 각지에서 단종을 안타까워하는 선비들이 선물을 싸들고 마을을 방문한다. 엄흥도가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한 동거는 얼마가지 못했다. 영주에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아들, 세조의 동생)이 조카이자 왕이었던 단종의 복위를 꿰하기 시작했다. 그를 따르는 충신들을 모으고, 군사들을 모았다. 단종에게 사람을 보내어 거사를 전하고 윤허해 주기를 바란다. 단종은 윤허를 하고 금성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명회가 호락 호락 당할 인물이 아니다. 심어놓은 첩자를 통해 이 사실을 인지하고 군사들을 보내어 역모를 꾀한다는 이유로 처단을 한다. 그리고 단종에게도 사약이 날아든다. 어명으로 노산군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노산군으로 유배를 했던 단종과 그의 유배를 보살펴야 했던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의 행복했던 날들을 그렸다. 역사적 진실을 떠나 감독이 그린 영화의 내용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왕은 무엇하는 사람인지, 왕이 추구해야 할 정치는 어떤 것인지 말이다. 어좌에 앉아 있을 때 단종은 신하들과 궁궐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백성들을 만나지 못했다. 당연히 백성들의 희노애락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배 생활 동안 그는 너무나 평범한 백성들의 삶을 경험한다. 그리고 백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알게 된다. 잠시나마 폐위된 신분으로 오히려 진짜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 자신의 백성은 지켜내는 진짜 왕의 모습을 보게 된다. 왕은 권세를 부리는 자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존재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렸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위에 사실 상 유배를 오셨다. 낮은 신분으로 유배오셨다. 하지만 그 유배 기간 동안 우리 왕이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셨다. 그리고 돌보셨다. 자기 백성을 먹이고 입히고 고치셨다. 권세를 부리며 세금을 거둬가는 로마의 왕이나 헤롯 왕과는 달랐다. 친히 자기 백성의 고충을 경험하고 그 아픔을 끌어안으며 동고동락한 왕이었다. 참된 왕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영화 말미에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종적을 감추었다는 자막이 흐른다. 세조의 어명을 어기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것은 그의 사랑이자 자신의 왕이었던 분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천한 신분으로 왕을 보살피고 왕과 함께 했으며 그 은덕을 얻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흥도는 국법 대신 하늘의 법을 따랐다.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테베의 왕이었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왕이었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오열한다. 운명의 장난을 견딜 수 없었던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빼 버린채 방랑길에 오른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다 둘 다 죽는다. 어부지리로 왕이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는 치러 주지만, 폴리네이케스는 외국의 군대를 끌어온 반역죄를 물어 사체를 들판에 버리게 했다. 하지만 이들의 동생이었던 안티고네가 몰래 폴리네이케스의 사체를 거둬 장례를 치른다. 국법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히고 사형을 언도 받은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제게는 왕의 명령보다 하늘의 명령이 더 소중합니다. 인륜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왕도 하늘의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고, 그 하늘의 명령은 백성을 잘 돌보는 것이다. 그 왕과 함께 사는 백성도 행복할 것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우리 시대에 정치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또 교회의 리더로써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경종을 울린다. 왕의 의자에서 내려와 백성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갈 때 왕은 왕이 되고, 그런 왕을 섬기는 백성 역시 행복하다. 우리왕이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왕과 함께 사는 사람으로써 이런 왕국을 만들어가는 인생이 되면 참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