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02(목)
 

본보는 부산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부산기독미술인협회 소속 작가들을 매달 한 명씩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신앙 간증 같은 이야기를 자전적인 목소리로 들어보고,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도 소개합니다. 본보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기독미술인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신들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생각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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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섭 작가(사직동교회)

 

나는 물고기를 만든다 — 은혜를 기억하는 삶

 

“나는 물고기를 만든다” 이 말은 단순히 내가 하는 작업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고백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금속을 다루며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 왔지만, 결국 내 작업 속에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물고기였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형상이기보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남겨두신 하나의 흔적이라는 것을.

 

기독교에서 물고기는 오래된 믿음의 상징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서로의 신앙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했던 ‘익투스’라는 작은 표식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믿음을 대신하던 고백이었다. 드러낼 수 없는 시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남겨졌던 그 단순한 형상이, 지금은 내 작업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나는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시작했지만, 작업을 계속해 오면서 점점 분명해졌다. “내가 만드는 물고기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나의 신앙이 손으로 드러난 하나의 고백이라는 것을”

 

내 작품 ‘은혜로운 삶’에서는 물고기가 사람의 머리 위에 놓여 있다. 이 형상은 나에게 중요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삶 위에 무엇이 놓여 있는가. 우리는 종종 자신의 생각과 의지, 계획을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왔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신앙은 그 중심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것, 그리고 그분의 은혜가 나를 덮고 있는 것. 나는 그 모습을 물고기라는 형상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물고기는 나에게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 곧 은혜의 자리이다.

 

나는 오랜 시간 공동체 속에서 작업해 왔다. 특히 정신과 병원에서 진행해 온 ‘행복한 미술’ 프로그램은 나의 삶과 신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로부터 멀어진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흙을 만지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곳에서 나는 예술이 단순히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은 함께 시간을 견디고, 서로를 바라보며, 존재를 나누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을 회복시키는 힘은 기술이나 완성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흐르는 은혜에서 온다는 것을 느꼈다.

 

커뮤니티 아트로 진행하는 ‘나무 물고기’ 작업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물고기를 만들고, 각자의 색을 입히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는 작업이다. 각각의 물고기는 모양도 다르고 색도 다르다. 그러나 함께 놓이면 하나의 방향을 만들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 모습 속에서 교회를 본다. 완벽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깊이 연결되는 공동체.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며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모습이다.

 

금속으로 만든 물고기들은 빛을 받을 때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보는 위치에 따라, 빛의 방향에 따라,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나는 그 변화가 은혜와 닮아 있다고 느낀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정된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때로는 분명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잘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그 은혜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마치 빛이 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금속의 표면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고, 여전히 흔들리며 살아간다. 작업을 하면서도,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때로는 나 자신을 붙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삶이 나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만난 사람들, 그리고 내가 만들어온 모든 작업들 속에는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인도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물고기를 만든다. 더 잘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가 어디 위에 서 있는지,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형상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형상을 통해 내 삶에 스쳐 지나간 은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은혜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 은혜를 기억하며, 조용히 물고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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