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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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교회는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나?
    지금은 성찰할 때 “어느새부터인가 우리는 한국개신교가 거리 정치 한복판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과격하면서 거친 목소리를 내는 몇몇 목회자들이 있고, 때로 노골적으로 때로 은밀하게 동조하는 수많은 기독교인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교회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모습과 영향력을 세워 가려는 욕망을 벗고, 잠잠히 침묵하고 성찰하는 것이 느리지만 새로운 종교성을 만들어 내는 출발점이다.” 낯설음을 통한 성찰의 책 김길구 이 책은 2022년 1월부터 23년 6월까지 목회자들을 위한 「목회와 신학」에 연재한 글을 수정 보완하여 재집필한 책으로 원래 1년 연재키로 했으나 반응이 좋아 6개월 더 연장할만큼 인기를 끈 책입니다. 김현호 이 책의 구성은 낯설게 보기, 지성과 반지성, 사회의 거울 속 교회의 자리, 모색과 돌파구 총 4부로 나누어져 있고, 각 부에 흥미로운 주제가 5개씩, 총 20개 꼭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회사가가 아닌 서양사를 전공한 저자의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류지원 예수의 가르침은 ‘거꾸로’예요. 산상수훈의 가르침이 대표적이죠. 첫째가 꼴찌 된다, 섬기는 자가 큰 자다, 가난이 복이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승자 독식의 뒤집혀진 왜곡된 역사를 거꾸로의 성찰을 통하여 바로잡자는 의미죠. 복음의 순수성을 위해 저항한 역사 속 교회의 초상들을 통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성경, 너무나 정치적인 책? 김길구 영역본 King James Bible의 제작과정을 통해 성경 번역이라는 순수한 종교 행위도 ‘너무나 정치적인 프로젝트’로 그 시대의 정치와 권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604년 제임스 1세가 청교도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영어 성경 번역을 추진한 이유는 더 좋은 번역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어요.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과 국교인 성공회 내부의 갈등은 물론 청교도들의 개혁 요구, 왕권과 교회의 복잡한 관계들로 혼란스러운 때였죠. 김현호 당시 영국사회는 교파의 입장에 따라 선호하는 성경도 각각이었지요. 청교도들은 쉬우면서도 왕권 비판이 가능한 제네바 성경을, 국가교회 질서가 필요했던 성공회는 주교들이 만든 공식예배용 비숍 성경을, 교회전통과 권위를 강조하는 가톨릭은 두에랭스 성경을 채택하여 자신들의 신학과 권력구조를 반영한 성경을 사용하던 때였죠. 그런 상황에서 종교의 통합과 왕권의 안정을 위하여 50여 명의 학자들이 7년간의 노력으로 국가 프로젝트인 King James Bible이 탄생합니다. 류지원 KJV의 대중적 수용과 성공에도 원래의 목적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왕의 정책에 반대한 소수의 분리파 청교도들은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으로 떠나며 가져간 성경은 제네바 성경이었고, 왕의 사후 계속된 갈등과 오랜 내전 때 크롬웰이 사용한 전투용 홍보 팜플릿에 인용된 성구도 다 제네바 성경이었으니 차이의 용납과 화해가 없으면 성경도 분열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죠. ‘읽는다’는 것 김길구 ‘책 읽어주는 남자’의 주인공 한나 슈미트는 문맹입니다. 그녀는 ‘최종해결책’이라는 이름의 유대인 대학살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 중입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전범 재판에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거짓 자백까지 해가며 종신형을 자초하는 ‘읽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나옵니다. 한나는 명령에 복종하며 살았습니다. 왜 유대인을 가두었는지, 왜 탈출시키지 않았는지, 왜 명령을 따랐는지 스스로 성찰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읽는다는 것은 문자해독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 읽기, 역사 읽기, 자기 행동 읽기까지 포함된 의미죠. 김현호 또 한 인물 아놀드 아이히만은 ‘생각 없이 읽는’ 우리의 이웃 아저씨 같은 보통사람입니다.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그의 일상은 그저 평범해 보이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명령은 숙지하고, 행정을 집행했습니다. 그는 문자적 독해는 했지만 도덕적 독해는 하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 평범한 사람들이 악조차도 일상처럼 성실하게 반복함으로써 윤리관이 무뎌져 악에 이용당하고 나아가 악을 돕는 관성의 피해를 지적하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신조어를 남겼습니다. 류지원 마르틴 루터는 자신의 두 동생도 페스트로 잃고 매 순간 죽음의 공포 속에 시달립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병적으로 지도 신부를 찾아 고해를 했습니다. 사제가 되고 교수가 되어도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날 수 없었지요. 그에게 하나님은 ‘의’를 강요하는 분이었습니다. 루터는 성서를 원어로 ‘읽으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아낌없이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루터에게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개자 없이 단독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주체적 인간을 의미합니다. 그것으로 최초의 근대인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권위에 대한 저항, 자기 양심의 각성, 인간의 주체성 회복을 뜻합니다. 김길구 ‘악은 특별한 악인이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신앙과 복종 속에서도 생긴다’ 는 경고입니다.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마녀사냥, 국가권력에 순응한 교회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선한 신앙인’이라 믿었지만 슈미트와 아이히만처럼 주체적 읽기와 권위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판 없이 권력과 체제에 복종하면서 결과적으로 폭력에 동참합니다. 역사 속 교회의 초상들 ①재세례파 김현호 ‘국가교회’를 거부한 급진적 신앙인 재세례파는 종교개혁 시대에 등장한 급진 개혁자들입니다. 루터와 칼뱅조차도 국가 권력과 일정 부분 협력했지만, 재세례파는 끝까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교회가 왜 국가와 결탁해야 하는가?’ 예수는 칼을 들지 않으셨는데 왜 교회는 폭력을 허용하는가? 그들의 특징은 유아세례 거부, 자발적 신앙 강조, 평화주의, 비폭력, 재산 공유 공동체, 국가권력과 거리 두기로 초대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려 했기 때문에 모든 교파로부터 탄압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물세례를 강조했다는 이유로 ‘물에 빠뜨려 죽이는 처형’을 감수해야 했지요. 오늘날의 메노나이트나 일부 평화교회 전통이 그 영향을 이어가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입니다. 역사 속 교회의 초상들 ②수도원 운동 류지원 수도원 운동은 세속화의 물결에 넘어가는 ‘제도교회’의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적극적인 대안문화운동체로 그 안에 있었던 저항성과 영성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수도원 영성은 소비주의, 권력욕, 탐욕에 대한 비판적 삶의 방식으로 ‘다른 삶도 있다’ 는 존재론적 저항운동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수도원을 없앤 유럽의 교회가 대부분 국교화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본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살아가려 했고, 세상의 성공 논리를 거부하는 저항공동체였으며, 병자 돌봄, 빈민 구제, 교육, 필사와 지식 보존기능을 수행하는 구호기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세 혼란기에는 수도원이 학교, 병원, 피난처 역할까지 했습니다. 종교개혁이 ‘신학적 자유’는 얻었지만, ‘급진적 삶의 형식’이 약화된 이유가 수도원 폐지에 있었습니다. 그 결과 개신교는 세속 직업의 소명을 강조했고, 현실 참여를 강화했지만, 반대로 침묵, 금욕, 공동체적 가난, 체제 거리 두기 같은 영성은 약화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역사 속 교회의 초상들 ③타자를 위한 교회 김길구 디트리히 본회퍼의 타자를 위한 교회는 단순 종교 조직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그는 교회가 스스로의 생존과 권력 유지에만 몰두할 때 복음을 잃는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회 중심에서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 곁에 서야 한다는 거예요. 본회퍼가 꿈꾼 교회는 고난받는 자와 함께하는 교회, 권력과 거리를 두는 교회, 행동하는 교회, 세상을 위한 교회입니다.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어가는 이유는 단순히 세속화 때문만이 아니라, 교회 스스로 자기 성찰과 갱신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가 등장합니다. 이는 ‘현대 세계와 대화하기 위한 갱신’을 뜻하죠. 즉 복음의 본질은 지키되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 김길구】 최종원 교수의 《거꾸로 읽는 교회사》 ‘교회사는 교회와 사회의 상호작용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서양사학자인 저자가 선정한 20개의 주제들이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추적한 역사서이다. 기존 교회사와는 접근방법이 달라 신선하고 흥미롭다.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이빛을 발한다. 교회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변해왔는가를 ‘거꾸로’ 된 시선으로 읽어 보자는 저자의 접근법이 낯설 수 있다. 승자의 연대기보다는 사라진 목소리, 패배한 신앙, 잊혀진 양심 속에서 복음을 다시 찾아 나서는 그의 시선은 십자가와 낮은 곳을 향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사 책으로는 이례적으로 2025년 5월 초판 이래 4쇄를 거듭할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 저자소개 ∥ 최 종 원 유럽 중세 역사학자,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서양사 및 교회사 교수. 경희대에서 회계학,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공부한뒤 영국 버밍엄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영국중세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 사회와 교회에 인문 정신의 제고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인문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저서∥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 《중세교회사 다시 읽기》,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 《공의회 역사를 걷다》, 《수도회 길을 묻다》을 비롯하여 《교회 경계를 걷는 공동체》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수도회 길을 묻다》 최종원 / 비아토르 / 2023 《공의회, 역사를 걷다》 최종원 / 비아토르 / 2020 《중세교회사 다시읽기》 최종원 / 홍성사 / 2020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6-05-29
  • [김양현목사의 영화이야기]프로젝트 헤일메리
    감독 :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주연 : 라이언 고슬링, 산드라 휠러 지구에 위기가 찾아왔다. 지구에서 가까운 행성인 금성 주위에 알 수 없는 검은 띠가 형성되었고 그 검은 띠가 금성을 집어 삼키고 있다. 문제는 이 검은 띠가 점점 지구를 향하고 있고 얼마 후면 지구는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 급하게 위기 관리팀이 형성되고 전 세계의 과학자가 모여서 원인을 파악하려 하지만 오리무중이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에바 스트라트는 다양한 인맥 풀을 동원하여 한 초등학교 교사인 그레이스를 찾아냈다. 그레이스는 천체 물리학자인데 학계의 관행과 기존 이론에 반기를 들고 퇴출되었다. 에바는 그레이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곧장 연구소로 가자고 재촉한다. 당황한 그레이스는 거절하지만 에바의 절박한 호소에 동의한다.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 항공모함이 극비 연구소다. 그레이스는 사방이 통제된 연구실로 향하고 무인 탐사선이 어렵게 채취한 검은 띠의 성분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 노력한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그레이스는 이 검은 띠가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복제로 점점 세력을 넓혀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 물체를 아스트로 파지라 불렀다. 해결 방안을 연구중이었던 팀은 지구에서 상당한 거리에 위치한 은하 중 타우세티라는 행성을 찾아냈다. 그 행성에도 아스트라 파지 현상이 있었지만 더 이상 확산되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우선 그 행성에 가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데 합의를 하고 원정팀을 꾸린다. 문제는 타우세티까지 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조종사들이 돌아오지는 못한다. 그 행성에 도착하여 물질을 확보한 뒤 무인 탐사선에 실어 보내야 한다.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 우주 조종사 3명은 자원을 했지만 연구팀 중에서 자원하는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아스트라 파지 문제를 밝혀 낸 그레이스가 적임자다. 에바는 그레이스에게 자원할 것을 요청하지만 그레이스는 거절한다. “당신이 가지 않으면 지구는 멸망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가야 하나요? ” “당신이 가면 당신은 희생당할지 모르지만 인류는 생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거절한다. 자신이 죽고 나서 인류가 생존한 들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민을 하던 에바 팀장은 그레이스에게 수면 마취제를 놓아서 조종사들과 함께 강제로 우주선에 탑승시켰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레이스가 우주선에서 깨어났다. 깨어난 그레이스는 당황한다. 왜냐하면 조종사들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망망한 우주 한 가운데 혼자 살아남았다. 마음의 안정을 찾은 그레이스는 우선 우주선 조종 매뉴얼을 찾아내고 이어 사망한 조종사들의 사체를 우주 공간으로 떠나 보낸다. 이제 혼자서 조종 매뉴얼도 익혀야 하고 타우세티 행성으로 향하여 샘플도 채취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레이스는 조정술을 익히고 궤도를 입력하여 타우세티 행성으로 향했다. 타우세티 행성에 가까이 간 그레이스는 자신의 우주선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우주선을 만난다. 도대체 누구일까? 어떤 우주인일까? 두려움과 기대감에 그레이스는 그 우주선에 가까이 가고 상대 우주선도 그레이스의 우주선에 가까이 왔다. 도킹을 시도하고 해치를 열었다. 그 우주선 너머에 돌덩이를 담은 미지의 존재를 그레이스는 만난다. 하지만 그 우주인은 그레이스를 헤치러는 의도는 없는 듯 하다. 그레이스는 그 우주인을 로키라 이름 지었다. 로키와 그레이스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서로의 의사를 전하고 드디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로키는 에드리언 행성에서 온 친구인데 그 행성도 아스트라 파지 문제가 발생했다. 이후 그레이스와 로키는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우세티로 향한다. 타우세티로 향하는 과정에서 그레이스와 로키는 협력을 한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타우세티에 존재하는 물질도 유기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아스트라 파지를 잠식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둘은 타우세티의 물질을 채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러던 중 우주선이 중력예 휩쓸리어 그레이스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 때 로키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을 벗어버리고 그레이스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로키는 가까스로 그레이스를 구하지만 산소 농도가 다른 그레이스의 우주선에서 의식을 잃는다. 정신을 차린 그레이스는 로키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간힘을 써서 그를 구해낸다. 이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가 했다. 그레이스는 지구까지 갈 연료를 채우고 로키와 작별을 고한다. 지구로 향하던 그레이스는 로키가 탄 우주선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망설이던 그레이스는 지구로 향하던 우주선의 궤도를 로키의 우주선으로 돌린다. 물질은 무인 탐사선에 실어 지구로 보내고 본인은 지구행을 포기하고 로키를 구하러 나선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우선 그레이스가 맞딱뜨린 미지의 존재인 로키가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점이다. 그동안 SF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외계인은 끔찍한 괴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지구를 침공하고 멸망하려던 자들이었다. 지구인은 외계인에 맞써 싸워서 지구를 지켜낸다. 대부분이 그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보여주는 외계인은 지구인과 화목하게 지내는 친구이자 우주의 공통 문제를 해결하는 동역자다. 오래전 작고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말했다. “미국인들은 왜 SF 영화에서 외계인을 대부분 적으로 규정하는가? 그것은 미국인들이 오래 전에 신대륙을 침략했고 원주민들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미국 밖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침략하고 몰아낼 것이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런 오랜 생각, 전통, 가치관을 극복한다. 외계의 존재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점을 제시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의 공통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는 자라는 점을 제시한다. 이탈리아 석학이었던 움베르토 에코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움베르토 에코 역시 ‘적을 만들다’라는 칼럼에서 인류는 끊임없이 타자를 적으로 규정함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고 전쟁이라는 방식을 통해 역사를 유지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제 이 오랜 가치관을 벗어버리고 인류는 하나라는 생각, 인류는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사실을 직시하자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이런 오랜 생각을 없애셨다. 원수도 사랑하심으로 인류를 하나로 만드셨다. 또한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우리는 그레이스나 로키가 비록 지구인과 에드리안 행성인으로 전혀 다르지만,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희생하고 있음을 본다. 그레이스도 로키도 자신을 희생함으로 타인을 살리고자 했다. 이 자기 희생이 모두를 살아나게 했다.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는 자기희생이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 분이 인류를 구원하셨다. 당연히 우리도 자기희생, 자기부정을 통해 타인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린다. 십자가는 자기부정이자 구원의 길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전해주는 메시지, 타인은 적이 아니며, 공존은 자기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문화
    • 영화
    2026-04-30
  • 바이블, 이단을 스캔하다
    ‘교회’와 ‘이단’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 신앙의 유일한 안전장치는 무엇일까 탁지일 교수는 ‘성경을 아는 것’이 ‘이단을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복음이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보다 ‘무엇이 복음인지’를 아는 것이 신앙의 우선순위라는 것. 이 책은 탁 교수가 남은 삶의 여정에서 ‘이단 전문가’보다 ‘복음 전도자’로 살고자 꿈꾸던 책이다. 이단들은 복음을 비밀스러운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숨겨진 뜻을 자신들만 알 수 있다는 왜곡된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말씀을 망령되이 일컷고, 성경의 거룩한 언어들을 훼손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단 대처는 일면 성경의 거룩한 언어들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하나님께 속한 성경 언어들의 저작권을 되찾아 오는 싸움이다. 이 책은 이단들이 표절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성경의 핵심어들, 즉 신천지, 구원, 기쁜 소식, 생명의 말씀, 복음, 은혜, 할렐루야, 다락방, 전도, 엘리야, 믿음, 에덴, 영생 등이 훼손되거나 오용되지 않도록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성경의 핵심어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용을 확대해 나간 책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앎'과 '삶'이 이단을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 이단 분별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저자소개> 한국 이단 연구의 선구자이자 월간 「현대종교」 설립자인 故 탁명환 소장의 장남으로, 이단 신도의 피습을 받아 소천한 선친의 뒤를 이어 이단 예방 및 대처를 위해 애쓰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신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신학석사, 한국교회사), 미국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GTU(Joint M.Div./M.A., 역사신학)에서 공부했으며,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St. Michael’s College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면서, 월간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 및 부산성시화 이단상담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이단』, 『교회와 이단』, 『이단 OUT』(이상 두란노), 『이단이 알고 싶다』(넥서스CROSS),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현대종교), 『가스라이팅 이단』(산), Family- Centered Belief and Practice in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and the Unification Church(Peter Lang Publishing, Inc.), 『찬송으로 듣는 교회사 이야기』(대한기독교서회), 『부산의 첫 선교사들』(한국장로교출판사), 『다르게 다가서는 역사』(예영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출판사 : 산 가격 : 20,000
    • 문화
    • 도서
    2026-04-13
  • 월간목회 3월호
    월간목회 3월호가 출간됐다. 이번 3월호 특집은 ‘한국교회 목회백서(04)-교육’이다. 다음세대가 아닌 ‘다른세대’라 불릴 만큼 낯설어진 세대,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신앙 전수의 위기 속에서 한국교회의 교육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월간목회」 2026년 3월호는 교육을 단순한 교회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 가정, 공동체 전체를 관통하는 목회의 핵심 과제로 조명한다. 온 세대 예배와 구조적 재설계를 통해 다음세대를 교회의 중심으로 세워 온 국내 교회의 실제 사례, 미국교회 현장에서 발견한 교회학교 ‘리셋’의 흐름과 교육 환경, 형식, 디테일의 변화 그리고 ‘무너진 교회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교육으로 응답한 생생한 기록을 담았다. 양육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커리큘럼을 재구성하며 현장에서 마주한 한계와 질문에 대한 목회적 대응을 돌아보고 성도 개인과 교회공동체가 경험한 변화도 함께 나눈다. 다음세대를 위해 교회의 시선과 우선순위는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는가. 오늘의 교육을 통해 한국교회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이번 특집이 한국교회 교육의 현재를 진단하고, 다음을 향한 길을 함께 모색하는 성찰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이현수 목사 규모가 아닌 분량으로 시작하는 ‘다음세대’ 사역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회’를 표어로 삼은 천성교회는 규모보다 분량에 충실한 다음세대 사역을 실천해 온 지역 교회로, 35년간 이어 온 세대통합예배와 ‘신앙 명문 가정 세우기 프로젝트’를 통해 교회와 가정이 함께 신앙 전수를 감당해 나가고 있다.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배와 가정, 일상과 관계 속에서 다음세대를 품어 온 실제 사례들을 살펴본다. 아울러 각 교회가 주어진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다음세대 사역의 가능성과 방향을 찾고자 한다. 최규명 목사 내일을 세우는 충정교회 교회학교 한때 다음세대의 위기를 겪었던 충정교회는 ‘복음과 사랑으로 다음세대를 세운다’라는 비전 아래 예배와 인력, 재정 등 교회 생태계를 새롭게 재편해 왔다. 전임 교역자 배치와 교사 양성, 교회·가정·교사가 연합하는 신앙 전수 구조를 통해 다음세대 사역의 실제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영유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관계 중심·복음 중심 사역으로 나타난 변화와 열매들은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이 곧 교회의 생명과 사명을 지키는 길임을 여실히 가르쳐 준다. 한민수 목사 프로그램이 아닌 절박한 물음에서 시작된 부흥 불로교회 교회학교 사역은 ‘아이들 사역’이라는 타깃 접근이 아니라,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절박한 목회적 질문에서 출발했다. 온 세대 예배를 교회의 중심에 두고, 교회학교 원리와 구조를 교회 전체 시스템에 적용하며 예배 문화와 공동체 정체성을 재구성했다. 특히 ‘아이워십예배’를 통해 다음세대를 예배를 이끄는 주체로 세워 나갔다. 이를 통해 교회 규모와 상관없이 적용 가능한 다음세대 목회의 실제적 방향과 희망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유승현 목사 미국교회에서 찾는 ‘교회학교 리셋’ 다음세대 위기 앞에서 다시 방향을 찾기 위해 미국교회에 주목했다. 미국교회 현장에서 교회학교를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환경·형식·디테일 전발을 리셋하는 구조적 변화로 대응해 온 흐름을 발견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간설계, 디지털 세대에 맞는 예배 형식, 그리고 평범함 속에 숨은 섬세한 배려는 다음세대를 교회의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힘이 되었다. 미국교회의 사례들을 통해 교회학교 리셋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 목 월간목회(2026년 3월호) 저 자 월간목회 편집국 펴낸날 2026년 3월 1일 판 형 208*276㎜ 분 량 244쪽 가 격 15,000원
    • 문화
    • 도서
    2026-03-06
  • [김양현 목사의 영화이야기]왕과 사는 남자
    감독 : 장항준 주연 : 유해진(엄홍도), 박지훈(이홍위), 유지태(한명회), 전미도(매화) 한 번씩 대정향교를 가곤 한다. 대정향교 한 쪽 동재에는 추사 김정희가 써 준 현판이 걸려 있다. 疑問堂(의문당), 의심이 생기면 질문을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1846년 대정향교의 훈장이었던 강사공이 유배를 와 있던 김정희에게 부탁해서 써 준 현판이다. 추사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니 학문에 있어 경지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강사공은 추사에게 여러 번 강의를 부탁했었고 추사는 이에 응했다. 당시 추사에게 글을 배운 제자들은 강사공· 박혜백·허숙 ·이시형 ·김여추 ·이한우 ·김구오 ·강도순· 강기석· 김좌겸· 홍석호 등이 있다. 추사의 상황은 비록 유배중이었으나,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학자에게 글을 배울 수 있었으니 최고의 혜택을 누린 셈이다. 유배자들은 그 지역의 학문 발전에 직간접적 역할을 했다. 1453년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후원자였던 김종서, 황보인등을 제거하고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그는 왕으로 등극하고 선왕이자 조카인 단종을 상왕으로 몰아냈다. 이후 단종을 복위하려는 움직임이 집현전 학자 출신 신하들에게서 있었고, 발각되어 성삼문, 박팽년 등이 고문 끝에 단죄가 된다. 세조는 이를 문제 삼아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보낸다. 한편 영월의 한 촌락인 광천골, 먹고 살기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는 부락민들이 있다. 이 마을의 촌장인 엄흥도는 고민이 많다. 부락민들을 돌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 비탈길에 넘어져 정신을 잃었다. 한참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이웃 산골마을이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이 마을에는 잔치가 벌어졌다. 흰 쌀밥에 고깃국에 닭요리가 한 상 가득하다. 아니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정신을 차린 엄흥도는 촌장에게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촌장의 말인즉 얼마 전 고관대작이던 양반이 이 마을로 유배를 왔는데 처음에는 양반 행세를 해서 귀찮고 성가신 존재였지만, 점차 이 양반을 찾아 많은 선비들이 오더라는 것이다. 양 손에 각종 선물 보따리를 가득 들고서. 유배 중인 양반이 혼자먹을 수 없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고, 심심하니 아이들을 불러 글공부를 가르쳤다는 게다. 그래서 마을이 활기차고 풍성해 졌다고 한다. 엄흥도의 눈이 반짝인다. 그는 즉시 영월 관아로 가서 사또를 찾아 뵙고 다짜고짜 다음 유배지는 광천골로 해 달라고 요청한다. 물이 굽이 치는 청령포가 있어서 유배지로 딱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유배자를 잘 돌보고 감시할 것이라고 약조한다. 얼마 후 엄흥도의 소원대로 광천골 청령포에 한 사람이 유배를 오게 되었다. 엄흥도는 옳거니 하면서 그를 반긴다. 하지만 엄흥도의 예상과 달리 왠 젊은이가 오게 되었고, 알고 보니 그는 폐위된 임금이다. 게다가 한명회라는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양반이 엄흥도에게 경고를 한다. 유배자를 잘못 감시하면 마을 전체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망연자실한 엄흥도, 일이 꼬여도 그렇지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면서 한탄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해야 하니, 엄흥도는 유배된 단종에게 식사 수발을 하기 위해 드나들 수밖에 없다. 단종 역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예상치도 못한 유배 생활을 하게 되니 삶의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염없이 누워있고 하늘만 쳐다보기 일쑤다.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만 지내는 단종을 보는 엄흥도의 심정도 타들어간다. 만에 하나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자기 목숨이 날아갈 판이다. 엄흥도는 노산군의 방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젠장, 고관대작을 바랬더니 폐위된 왕이 왠 말인가? 이러다 나도 가족들도 다 죽게 생겼구나” 엄흥도의 불평을 들은 단종의 마음도 복잡하다. 왕으로 있을 때도 백성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는데, 유배되어 와서도 백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단종은 기운을 차리고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밥상을 맞고, 마을 나들이도 하기 시작한다. 마을 아이들에게 글도 가르친다. 얼마 후 단종이 유배된 사실이 소문을 타고 나더니, 전국 각지에서 단종을 안타까워하는 선비들이 선물을 싸들고 마을을 방문한다. 엄흥도가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한 동거는 얼마가지 못했다. 영주에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아들, 세조의 동생)이 조카이자 왕이었던 단종의 복위를 꿰하기 시작했다. 그를 따르는 충신들을 모으고, 군사들을 모았다. 단종에게 사람을 보내어 거사를 전하고 윤허해 주기를 바란다. 단종은 윤허를 하고 금성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명회가 호락 호락 당할 인물이 아니다. 심어놓은 첩자를 통해 이 사실을 인지하고 군사들을 보내어 역모를 꾀한다는 이유로 처단을 한다. 그리고 단종에게도 사약이 날아든다. 어명으로 노산군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노산군으로 유배를 했던 단종과 그의 유배를 보살펴야 했던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의 행복했던 날들을 그렸다. 역사적 진실을 떠나 감독이 그린 영화의 내용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왕은 무엇하는 사람인지, 왕이 추구해야 할 정치는 어떤 것인지 말이다. 어좌에 앉아 있을 때 단종은 신하들과 궁궐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백성들을 만나지 못했다. 당연히 백성들의 희노애락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배 생활 동안 그는 너무나 평범한 백성들의 삶을 경험한다. 그리고 백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알게 된다. 잠시나마 폐위된 신분으로 오히려 진짜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 자신의 백성은 지켜내는 진짜 왕의 모습을 보게 된다. 왕은 권세를 부리는 자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존재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렸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위에 사실 상 유배를 오셨다. 낮은 신분으로 유배오셨다. 하지만 그 유배 기간 동안 우리 왕이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셨다. 그리고 돌보셨다. 자기 백성을 먹이고 입히고 고치셨다. 권세를 부리며 세금을 거둬가는 로마의 왕이나 헤롯 왕과는 달랐다. 친히 자기 백성의 고충을 경험하고 그 아픔을 끌어안으며 동고동락한 왕이었다. 참된 왕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영화 말미에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종적을 감추었다는 자막이 흐른다. 세조의 어명을 어기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것은 그의 사랑이자 자신의 왕이었던 분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천한 신분으로 왕을 보살피고 왕과 함께 했으며 그 은덕을 얻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흥도는 국법 대신 하늘의 법을 따랐다.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테베의 왕이었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왕이었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오열한다. 운명의 장난을 견딜 수 없었던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빼 버린채 방랑길에 오른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다 둘 다 죽는다. 어부지리로 왕이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는 치러 주지만, 폴리네이케스는 외국의 군대를 끌어온 반역죄를 물어 사체를 들판에 버리게 했다. 하지만 이들의 동생이었던 안티고네가 몰래 폴리네이케스의 사체를 거둬 장례를 치른다. 국법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히고 사형을 언도 받은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제게는 왕의 명령보다 하늘의 명령이 더 소중합니다. 인륜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왕도 하늘의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고, 그 하늘의 명령은 백성을 잘 돌보는 것이다. 그 왕과 함께 사는 백성도 행복할 것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우리 시대에 정치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또 교회의 리더로써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경종을 울린다. 왕의 의자에서 내려와 백성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갈 때 왕은 왕이 되고, 그런 왕을 섬기는 백성 역시 행복하다. 우리왕이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왕과 함께 사는 사람으로써 이런 왕국을 만들어가는 인생이 되면 참 좋겠다.
    • 문화
    • 영화
    2026-02-27
  • [기독교인문학]성경적인 세상을 만드는 힘
    기독교 세계관이 필요한 이유 “성경적 세계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더더욱 어렵다.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이 성경적인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고, 세계화되고 있는 현대문화가 성경적인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통 신앙으로는 일관성 있게 성경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 김길구 세계는 지금 불확실성으로 인해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서 왔고, 어디에 서 있으며,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위해 이 책이 그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다룰 책은 손봉호교수의 《쉽게 풀어쓴 세계관 특강》으로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과 함께 데이브드 노글이 지은 <세계관 그 개념의 역사>도 함께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김현호 저자인 손봉호 교수는 ‘기독교학술교육동역회’와 ‘기독교학문연구소’가 2009년 사단법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로 통합된 뒤 10년 동안 이사장을 역임할 정도로 기독교 세계관운동에 진심입니다. 이제는 700명에 가까운 교수를 포함 천 명에 가까운 회원을 가진 국내 최대의 학술단체로 성장하였고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된 학술지 <신앙과 학문>와 격월간지 <신앙과 삶>을 발행하고 있으며, 이 책을 출판한 CUP란 출판사도 운영 중입니다.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 대학원과 연계 프로그램도 활발합니다. 류지원 이 책은 저자가 교회에서 특강한 내용을 엮어 15년 전에 출간한 <생각을 담아 세상을 보라>를 2023년에 전면 수정 보강한 책으로, 신학과 철학 등을 아우르는 무거운 담론을 석학 답게 쉽고 명쾌한 논리로 설명하여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세계관의 필요성 김길구 저자는 다종교사회인 우리나라가 종교적 갈등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여 온 이유를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한국적이란 공통분모가 기독교 세계관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어요.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인데 실재 삶에서는 교인답지 못한 세속적 세계관으로 살아가는 교인이 많다는 의미겠죠. 김현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적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관된 ‘틀’이 필요합니다. 이 틀을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류지원 그런 의미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과 기독교윤리학을 가르친 영향력 있는 교육가요, 대중운동가로서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하는 신앙인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이번 책은 우리에게 기독교 세계관으로 인도하는 훌륭한 길라잡이입니다. 카이퍼와 월터스 김길구 세계관(worldview)이라는 용어는 칸트에 의해 ‘우주와 인간의 위치를 통합적으로 보는 관점’을 표현하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말인데, 기독교 세계관이 국네에 소개된 것은 알버트 월터스의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오고 나서지요. 성경의 핵심 키워드를 제목으로 쓴 이 개념은 오랜 세월의 산물로 19세기 아브라함 카이퍼가 창조-타락-구속을 사회·정치·문화의 분석 틀로 삼아 ‘영역주권’을 주창한 것인데, 하나님은 교회뿐 아니라 사회, 국가, 교육, 문화,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주권적인 통치를 행사하신다는 이론으로 세계관 운동의 실질적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류지원 알버트 월터스의 번역본이 나왔을 때 시기가 묘했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한국교회의 갱신과 사회 변혁이라는 큰 과제에 직면한 교계에 개혁주의적 대안과 그 성경적 기초를 제시해 줌으로써 많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김현호 카이퍼는 같은 네덜란드인 바빙크와 미국의 워필드와 함께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지요. 신학자이면서 교회담을 넘어 사회개혁을 위해 정치권 진출하여 네덜란드의 수상을 역임한 걸출한 인물입니다. 신 칼뱅주의가 그에 의해 시작되고,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를 설립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세속적, 무신론적 근대혁명사상에 맞서 하나님의 주권과 기독교적 사회질서를 지키려고 기독교 정당인 반 혁명당을 창당하였습니다. 세계관 운동은 교회개혁과 사회참여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세계관의 세 축 : 창조-타락-구속 류지원 기독교 세계관의 첫 번째 축은 창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무로부터 선하게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역사적 창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은 인간은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그에 따른 책임져야 하는 존재이지요. 자연과 사회는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이 아름답고 멋지고 조화로운 세상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두 번째 축이죠.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그 결과 모든 피조물이 고통과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개인과 사회 경제 문화 전체가 왜곡되었고, 자기중심적인 탐욕으로 불의와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김현호 세 번째는 구속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그 악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부활을 통해 회복과 개혁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속사적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독교는 미래지향적입니다. 구속이 단순히 개인의 영혼 구원이 아니라 창조세계의 전 영역에 미치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분별하여, 대안적 공동체로서 사회개혁의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계관 운동의 흐름과 과제 김길구 서구 유럽으로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1960년대 현대문화를 비판한 프란시스 쉐퍼의 ‘라브라 공동체 운동’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사고의 틀’의 개념을 정립한 시기를 1세대 운동으로 구분하고, 제임스 사이어의, 찰스 콜슨, 낸시 피어시의 공공신학·문화변혁을 대학 캠퍼스 운동(IVF, CCC)을 통해 확산한 1980년부터의 기독교 변증과 사회참여가 결합한 확장기를 2세대로 나누며, 1990년대 손봉호, 김영한 등이 중심이 되어 한국에서 활동한 시기를 3세대 성숙기로 분류하고 포스트모던 시기로 이어지는데 끝으로 이 운동의 과제를 알아보죠. 류지원 80~90년대 기도하면 된다는 영적 체험 중심의 반지성적 분위기 속에 지성적 신앙 모델을 제시하고, 청년세대에게 신앙의 ‘이유’를 주었으며, 문화·정치·사회 문제 등 공공윤리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을 갖게 하여 한국개신교의 지적자산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는 긍정적인 면이겠지요. 김현호 부정적인 면은 지나친 단순화로 정치·이념과 쉽게 결탁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칫 세계관이 ‘복음’이 아니라 ‘정치 진영 논리’를 옹호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과유불급이라고 반문화적 세계관과 결합된 극단적 사고와 과잉 지성주의도 문제입니다. 신앙이 실제 삶의 변화나 공동체적 실천과 동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이 처한 맥락을 도외시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에 그치는 경향도 문제가 될 수 있겠죠. 김길구 그 대안으로 세계관 운동이 머리 중심의 이론이 아닌 습관, 예배, 몸, 사랑의 운동으로, 그리고 교회공동체의 삶과 이야기 중심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충고도 새겨들어야 하고, 기독교 세계관은 유용하지만 지나친 단순화와 정치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에도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본론보다는 곁가지에 집중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손 봉 호 < 쉽게 풀어쓴세계관 특강 > 다종교사회인 우리나라가 그동안 종교적 갈등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여 온 이유를 한국적이란 공통분모가 기독교 세계관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저자는 신앙생활은 기독교적으로 하고 생활은 한국식으로 한다고 뭐가 나쁜가?를 반문하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그네이므로, 소금의 맛을 잃지 않으려면 이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초월하여 창조, 타락, 구속의 세 가지 프리즘을 통하여 세상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분별하여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믿는 자에게 기독교 세계관은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교회의 갱신과 사회 변혁을 바라며 이 땅에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 저자소개 □ 손 봉 호∥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으며,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고신대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창립하고 이사장(10년)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명예이사장이다. 사회활동도 활발하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외 다양한 NGO 활동을 통해 교회와 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고통받는 인간》, 《어떻게 살 것 인가》, 《하나님을 사랑한 철학자9인》,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세계관, 그 개념의 역사》 데이비드 노글 / 비아토르 / 2002 《니고데모의 안경》 신국원 / IVP / 2022 《코끼리 이름짓기》 제임스 사이어 / IVP / 2007 《하나님 나라와 기독교 세계관》 김덕종 / 좋은씨앗 /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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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30
  • [김양현목사의 영화이야기]아바타 3 불과 재
    감독 : 제임스 카메룬 주연 : 샘 워딩턴(제이크 설리), 조 샐다나(네이티리), 시고니 위버(키리), 스티븐 랭(마일즈 쿼리치), 우나 채플린(바랑), 브리튼 돌턴(로악), 잭 챔피언(마일스 스파이더) 2009년 사람들은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스크린에 펼쳐놓은 마법 같은 세상에 감탄했다. 영화 제작의 신기원을 이룬 아바타 때문이었다. 아바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감독이 그려낸 판도라 행성의 모습에 감탄을 연발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했다고 하지만 너무나 화려하고 입체적이고 신비적이었다. 판도라 행성의 공중의 떠 있는 산, 판도라 행성의 각종 동물들에 대한 묘사, 그리고 에이와라 불리는 신과 신성한 나무의 모습들은 우리를 눈부시게 했다. 스토리 또한 신선한 충격이다. 황폐해 져 가는 지구를 떠나 인류는 판도라로 불리는 행성을 발견했다. 이 행성은 지구와 아주 흡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생명체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것이 지구와 흡사했고, 나비 족으로 불리는 종족이 존재했으며, 풍성한 광물이 존재한다. 인류는 우선 판도라 행성의 풍부한 광물을 이용하기 원하고, 이어 이주를 행성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이주를 위해서는 한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판도라 행성의 대기가 지구와 다르기 때문에 인류는 산소 마스크 없이 숨을 쉴 수가 없다. 유일한 방법은 판도라 행성에 거주하는 나비족과 같은 신체를 갖는 일이다. 이를 위한 노력이 아바타 프로젝트다. 나비족과 동일한 구조의 신체를 만들고 이에 인간의 정신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가 차출된다. 제이크 설리의 형이 아바타 프로젝트의 연구원이었고 그의 DNA를 복제해서 아바타를 만들었으나 판도라 출발 직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근접한 DNA를 가진 동생이 선발되었다. 제이크 설리는 판도라 행성에 도착하여 아바타의 몸과 연결하여 나비족의 거주지로 이동한다. 원래 목적은 나비족의 언어와 관습을 배우고, 그들의 환심을 사서 나비족을 이주시키고 그들의 주 거주지인 나무의 뿌리 밑 광물을 캐는 일을 위한 투입이었다. 하지만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 족장의 딸인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졌고 점차 나비족의 일원이 된다. 판도라 행성의 기업 관계자는 나비족을 몰아내고 광물 채취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강제 진압에 나선다. 엄청난 군사 무기들과 용병들을 앞세워 나비족을 향한 총공세에 들어갔다. 제이크 설리는 이 작전의 끔찍함을 인지하고 나비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나비족 뿐 아니라 타 종족까지 불러 모아 인간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결국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그리고 나비족은 판도라 행성의 에이와 신의 도움으로 인류를 몰아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기업은 다시 판도라로 향한다. 이번에는 더욱 가공할 무기와 물량 공세로 판도라 행성을 공격해 간다. 지난 공격에 실패한 마일스 쿼리치 대령은 이번에는 판도라 행성의 망콴족의 리더 바랑과 연합작전을 펼친다. 망콴족은 판도라 행성의 주변부의 황무지에 거주한다. 그들로서는 나비족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중심지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욕망과 인간의 목적이 동맹을 맺게 했다. 이 연합 공격에 제이크 설리는 다시 맞서 싸운다.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신화가 우리 삶의 일상에서 형성되지만 일상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신화는 삶의 반영이자 삶의 추동이다. 신화가 삶을 이끌어 간다. 오늘날은 영화가 그 역할을 한다. 영화는 우리 삶의 현실을 반영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삶의 방향도 만들어 낸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시도한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감독은 지구의 환경 파괴라는 현실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판도라라는 행성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현실에서 지구와 흡사한 다른 은하계로의 행성 간 이동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으로 묘사한다. 감독이 묘사한 이런 설정이 몇 십년 혹 몇 백년 뒤에 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오래 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21세기 오디세이라는 영화에서 달 여행을 상정했는데 지금 가능한 시점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바타는 현재 인류가 연구중인 피지컬 AI 기술과 흡사하다. 멀지 않아 인류는 로봇의 몸에 인공지능을 탑재한 피지컬 AI를 만들어 낼 것이다. 또한 인류와 아주 흡사한 존재도 가능해 질 것 같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스크린에서 펼쳐 낸 아바타와 같은 존재가 현실에서도 가능할지 모른다. 이렇게 영화는 우리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가야 할 현실로 이끈다. 이 쯤에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영화의 메시지를 생각해 보자. 감독은 두 가지 차원의 메시지를 영화에 녹여낸다. 우선 그는 과거 유럽인들의 신대륙 침략을 회상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바타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의 우주 버전이다. 과거 백인들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착했다. 그 과정에 원주민을 몰아내고 몰살하기도 했다. 자연을 파괴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했다. 감독이 그려낸 스크린은 우주 공간 판도라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것은 신대륙 정착의 새로운 버전이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우주로의 여행, 화성으로의 여행, 소위 테라포밍이 추구하는 것 역시 과거 신대륙의 발견에 다름 아니다. 감독은 이런 침략과 정착 이면에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 행위를 다룬다. 아바타에서 인류는 판도라 행성의 동식물을 무분별하게 불태우고 개발한다. 그런 과정에서 생태계가 신음한다. 판도라 행성의 나무와 식물, 동물 등은 인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하나로 묶여 있다. 나비족은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잠시 빌려와 쓰다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가르친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과 별개로 여기며 대상화하고 타자화해서 파괴한다. 생태계의 파괴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 이제 성경적 묵상으로 연결해 보자.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인류를 향해 하늘에서 온 사람들로 묘사한다. 그들이 보기에 우주선을 타고 판도라 행성에 도착했기에 인간은 하늘에서 온 존재다. 제이크 설리는 하늘의 사람으로 판도라 땅에 정착한다. 그는 아바타의 몸으로 나비족으로 들어가며 그들과 거주하며 결국은 그들의 메시야로 세워진다. 예수는 하늘에서 땅으로 온 존재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과 같이 되셨다. 사람의 몸을 잠시 입으시고 이땅에 태어나고 거주하셨다. 이 땅에 거주하는 동안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고, 외로운 자, 병든 자, 가난한 자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그들을 고치셨다. 그리고 로마 제국에 맞서 싸우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제이크 설리와 오버랩된다. 아니 제이크 설리는 영화에서 그려낸 예수, 메시야와 다름 아니다. 아바타가 기독교인에게 던져진 숙제가 있다. 곧 우리를 둘러싼 자연, 환경은 타자가 아니라 우리와 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상화하고 구별화해서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자연도 하나님의 창조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 단계에 있어서 인간과 연결선상에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며 또한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 세상을 돌보고 가꾸라는 명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우셨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최소한의 사용을 해야 하며, 지구라는 환경을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로 여겨 잘 가꾸어야 한다. 영화 아바타가 던지는 주제들과 질문들에 응답하는 책임있는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문화
    • 영화
    2026-01-09
  • [김양현목사의 영화이야기]마리아, 마더 오브 지저스(2024)
    감독 : D.J. 카루소 주연 : 노아 코헨(마리아), 이도 타코(요셉), 안소니 홉킨스(헤롯) 성탄, 거룩한 분의 탄생이다. 2천여년전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 신학적으로 성육신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이 것에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 즉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아지셨다. 가장 낮아지심으로 낮은 자를 구원하신다. 아타나시우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사람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셨다. ” 하나님의 아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어두울 때 오셨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즈음 세상은 로마라는 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분열된 로마를 통일했다. 원로원은 그를 신적 존재로 칭송했고, 제국의 시민들은 그를 숭배했다. 아우구스투스는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의 평화를 선언했다. 다시는 전쟁이 없는 상태, 평화의 제국이 세워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로마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팍스 로마나는 헛된 말에 불과했다.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정복 지역을 통치했고,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강제 부역에도 동원했다. 혹여 로마에 반기를 들면 가차없이 처벌했다. 로마의 지배 하에 살아갔던 피정복국의 사람들은 암흑 그 자체였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 황제의 호의를 받은 헤롯이 통치했다. 헤롯은 포악한 왕이었다. 그는 권력에 눈이 멀었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들조차 처형할 정도로 잔인했다. 헤롯은 성전을 재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자신의 왕궁을 건축했다. 당연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갖 부역에 동원되었고 높은 세금을 내야 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어둠이자 절망 그 자체였다. 바로 이런 시기에 한 줄기 빛이 비취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한 일을 하셨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를 보내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와 사뭇 달랐다. 하나님은 화려한 왕궁에 속한 자가 아닌, 이름 없는 한 여인을 선택하셨다. 그것도 결혼하지도 않는 처녀를 선택하시고 그녀의 몸을 통해 인류의 구원자가 잉태되고 탄생하게 하셨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D.J. 카루소 감독은 이런 부분을 스크린으로 풀어냈다. 그가 만든 ‘마리아, 마더 오브 지저스’는 마리아라는 여인에게 집중한다. 감독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지만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보완한다. 마리아의 어린 시절을 복원해 낸다. 유년시절의 마리아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성전에 갔다가 배고파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는 지나치지 않고 빵을 나누어준다. 이런 행동은 감독의 재구성이지만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녀의 이런 삶, 즉 하나님을 향한 깊은 기도와 사람을 향한 사랑이 그녀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도록 선택받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녀의 사랑과 자비,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신 것이다. 이어 영화는 마리아의 순종에 주목한다. 생각해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선언한 계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성이 아이를 갖게 된다니, 어떻게 이런 일을 믿을 수 있겠으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한 마리아가 살던 시대에는 처녀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갖게 되면 즉시 마을 공동체 앞에 끌려나가 심판받을 가능성이 컸다. 마리아가 살던 갈릴리 지역은 씨족 공동체가 모여 살던 곳이므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갈 것이다. 즉 그녀는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순종했다.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천사의 말에 순종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고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을 예수라 하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즉시 순종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순종이 세상을 바꾸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신앙 고백을 통해 잉태되었고, 탄생하게 되었다. 이어 영화는 순종의 여인 마리아를 집중해서 보여준다.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는 것에도 전적으로 순종하고, 헤롯의 학살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는 일에도 순종한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긴다. 이후에 어린 예수님을 키우는 일에도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이어 예수께서 공사역을 하시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실 때도 그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아니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순종한다. 이런 순종은 그녀가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그 뜻에 헌신함을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그녀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는 통로가 되었다. 그래서 신학은 전통적으로 그녀를 ‘신을 잉태한 자’(Theotokos)로 존중해 왔다. 이 영화는 마리아 뿐 아니라, 마리아의 부모들, 마리아의 남편 요셉, 그리고 무엇보다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사랑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다. 즉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을 넘어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삶은 순종 그 자체셨다. 그 분은 십자가를 지셔야 할 상황 앞에서도 이렇게 기도하셨다. “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예수님의 이런 순종은 누구에게 배웠을까? 물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나님에게 순종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 살아가셨던 예수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이러한 순종의 삶을 배우셨음에 틀림없다. 역사적으로 가장 암흑의 시기에 순종의 여인을 통해 구원자가 오셨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믿음으로 반응한 여인을 통해 세상에 구원이 이루어졌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순종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2천년전처럼 오늘 우리 사회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소망이 점점 사라지고 분열과 대립이 가득하다. 교회는 그 어느때보다 세상으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하기에 오늘 마리아와 같은 순종의 사람이 필요하다. 어둠을 다시 비출 사람, 세상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사람, 그 한 사람 순종의 사람이 바로 나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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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9
  • [기독교인문학]“작은 교회가 아름답다!”
    재편, 건강한 작은 교회의 꿈! “교회 대형화에 따른 신학적, 윤리적 타락의 반작용으로 건강한 교회 회복을 위해 가정교회, 이머징처치, 미셔널처치 등 새로운 교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꿈꾸는 건강한 작은 교회의 핵심가치는 성경적 공동체, 일상의 제자도, 민주적 운영, 공공의 공공성, 거룩한 공교회성의 회복이다.” ■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김길구 「강북제일교회」 (이상대 목사)는 아파트 단지 내 교회로 250여 명까지 늘었던 교회가 내부 문제로 목사가 갑작스레 사임하고 후임인 이 목사가 부임하고 보니 남은 교인은 30여 명에 불과하고, 교회의 재건을 위해 특정 개인의 생각, 경험, 비전에 좌우되지 않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죠. 류지원 교회의 사유화, 세습, 교회매매 등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공동체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을 위한 정관을 만들고, 교인이 120명이 넘으면 분립개척을 준비하고 150명이 되면 실행토록 하고, 관행처럼 이어온 선거 잡음이 없도록 임직 헌금, 선거운동, 결과에 불복하는 3무 캠페인 을 실시했어요. 김현호 사람을 늘이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없애고 성경공부를 통한 전도와 선교적 삶을 일상에서 실천케 했다고 해요. 어려운 일이죠. 우리는 너무나 쉽게 큰 교회도 건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 뒤에는 큰 교회를 지향하는 우리들의 욕망이 숨어 있어요. ■ 상처 입은, 다시 배우는, 다시 써 내려가는 류지원 「그십자가교회」 (손영국 목사) 위 슬로건은 부교역자 시절 교회의 내분을 거치며 겪은 아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교회란 건물이 아닌 사람 중심의 교회공동체로 선교적교회 모델을 따르게 된 과정을 표현한 것 같아요. 김현호 전통적 예배모임과 헌금제도를 성경적으로 바꾸고 가족이 교회 되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세대 통합예배를 드리며, 젊은 세대에 맞는 경배와 찬양, 개인적 영성을 세우고 나누는 큐티푸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김길구 특이한 것은 마을 이장으로서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 예배당이자 도서관인 작은 도서관을 개설하여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열린 공간으로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어요. 지역의 단체들과 함께 활발한 사회적 활동과 교회갱신을 위한 작은교회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어요. ■ 알콩달콩 으랏차차 김길구 「나무교회」(홍선경 목사)는 여성이죠. 클래식 음악 전문 잡지 ‘음악춘추’에 근무한 이력답게 감성이 풍부한 목회자입니다. 남성의 가부장적 리더십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섬세하고 수평적이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나무를 주제로 50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목회 얘기를 풀어내는 글솜씨와 목회현장에서 일어나는 애환을 ‘알콩달콩 으랏차차’ 단 두 단어로 표현하는 감정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리더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현호 그 예로 ‘나무에게 부탁했네, 하나님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그러자 나무는 꽃을 피웠네’-타고르. … 쉼이 필요한 그대, 숨 쉬고 싶은 그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소개합니다.- 타고르의 시를 인용한 나무교회의 전도지 문구들입니다. 여성 특유의 감성이 목회 전반에 촉촉이 배어있는 감성 목회를 해서 교계의 가부장적 문화와 확실히 차별화돼요. 류지원 주중에 1명, 혹은 2명, 많으면 4명이 목회자와 함께 주중 모임을 갖는데 직장 때문에 주일 예배를 못 드리는 교우를 위한 것이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작은 교회의 장점이겠죠. 책과 영화, 특강 등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시대를 만나는 시간도 가져 다양한 접촉점을 통해 소통을 이어 간다고 합니다. ■ 말씀이면 충분한 김현호 「말씀의빛교회」(윤용 목사)는 학원을 운영하다 전임목사가 된 경우예요. 2002년 ‘교회개혁실천연대’ 출범시 집행위원으로 정관 갖기 운동과 성직자 과세운동 등에 관심이 많던 그는 목회현장에 적용, 운영위원회 5명 중 여성 2명을 두는 등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오산시 한 지붕 두 목회자’로 한 건물에 두 교회가 사이좋게 지내는 기사가 언론을 타기도 했어요. 류지원 슬로건 답게 성경을 교인들이 스스로 읽고 이해하고 실천하게 하는데 중점을 줘요. 6년 동안 성경 전체를 묵상할 수 있는 성서유니온의 <매일성서>를 채택, 주일예배 설교는 물론 주일예배 후의 소그룹 모임, 주중 기도회와 심방 설교에서도 활용함으로써 말씀의 흐름을 일관성 있게 유지합니다. 김길구 봉사도 전문사역단체와 연대 전문화하되 단순화해요.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과 어른 멘토를 1:1로 연결하는 멘토링 사역을 17년간 펼친 (사)러빙핸즈와 협력하여 ‘초록리본도서관’을 개관하고, 도서관을 준비하면서 또 다른 단체인 ‘청소년부모지원 킹메이커’와 청소년시절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건강한 작은교회를 꿈꾸며 김길구 「세나무교회」(이진오 목사) ‘나는 작은 교회를 주장하지 않고, 건강한 작은 교회를 지향한다’며 프랜차이즈화된 한국교회를 건강한 작은 교회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으로 알려진 그는 기윤실의 사무처장을 등 기독교NGO 출신으로 현재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김현호 쉼과 환대가 있는 공동체를 이루고, 스스로 성경을 읽고 따르는 신자가 이웃과 함께하는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것이 비전입니다. 교회보다 도서관을 먼저 만들고, 청장년 3백명이 넘지 않도록 하여 교회가 커지면 분립하는 규약을 만들어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류지원 교회의 민주적 운영도 돋보입니다.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회’(CAICAM)에 교회 등록을 한 뒤 교인들의 주도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 설립한 교회임에도 자신이 먼저 교회규칙대로 선임 절차를 밟고 초빙된 후 업무협약을 통하여 6년 임기를 시작함으로써 교회 운영의 투명성을 높혔습니다. ■ 노인대학이던 교회이야기 김길구 「청운교회」(임병열 목사)는 전임목사가 교인들의 약속헌금을 믿고 건축을 진행하는 가운데 부담을 느낀 교인들이 하나 둘 떠나고 마지막에는 30여 명만 남는 먹먹한 얘기와 완공 후 남는 공간의 활용을 고민하다 30여 교인들이 자원봉사자가 되어 2백 명의 노인대학 어르신을 섬기는 얘기, 매리츠와 코로나 사태 때의 좌절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하여 느끼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의 감동이 이 책에 담겨있어요. 류지원 책 말미에 노인대학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는 부분이 있어요. 노인대학은 한국교회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이제는 일반화 되었고, 어르신에 대한 고립감을 해소하고 세대를 통합시키며, 교회의 지역 섬김과 사회적 신뢰 형성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점차 정부주도의 사회복지가 보편화 되면서 비중도 줄어드는 추세로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재정적 요인도 부담이 되겠죠. 김현호 대형교회의 식당 운영도 자원봉사자가 적어 폐지하는 곳도 생기고 있는데, 본문에 ‘노인대학은 남은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서 하는 일이고 남겨둘 힘 따위는 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결기가 느껴지기도 해요. 서로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겠죠. ■ 함께하는 교회 이야기 류지원 「함께하는 교회」(박창렬 목사)를 만들려면 성도 간의 원활한 소통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소외가 없도록 민주적이고 투명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계급장 떼고 목회자 외에는 호칭에 ‘씨’를 붙이게 하고 재정은 카카오 모임통장을 개설 공개토록 했어요. 김길구 이 교회는 간판도 전용공간도 없이 주일만 학원을 빌려 예배를 드려요. 전용공간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재정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공간이 필수라는 생각은 아니라고 해요. 또 하나의 특징은 한 달에 한 번씩 성찬식을 하고, 통합교단인데 개역개정 대신 읽기 편한 새번역성경을 쓴다고 해요. 김현호 박목사는 20대부터 신장이 안 좋아 이식수술을 받은 내부장기 장애인이라고 해요. 그런 연유인지 소외된 이들을 혐오하거나 포장하여 보는 것 모두를 차별이라 생각하고 예수처럼 배제 없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리 김길구】 이상대 목사 외 6인 《 건작동 7교회 이야기 》 올 6월 돌아가신 신학자 월터브루그만의 대표작 ‘예언자의 상상력’이 절실한 이때 그 해법이 ‘건강한 작은교회’라고 주장하는 7교회의 알콩달콩한 목회 얘기를 담은 본서는 그동안 더 크고 높고 많은 것을 쫓던 한국 교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위기의 시기에 언감생심 개척이라니~ 이 책은 크지 못해 작은 교회가 아닌 지향성의 차이에서 오는 성경적 공동체, 일상의 제자도, 민주적 운영, 공의의 공공성, 거룩한 공교회성의 핵심적 가치를 공유하는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건작동)’ 멤버들의 7인 7색의 육필 개척교회 체험기이다. 급변하는 이때 저 멀리 떨어진 섬 갈라파고스처럼 점차 고립되어 가는 한국교회에 이 작은 교회 운동이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유쾌한 반란에 격려를 보낸다. ◇ 저자소개 건작동 이상대 목사외 6인 공저∥ 이 책은 건작동 소속 7인의 목사들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줄여서 전작동) 소속 멤버들이다. 이 책은 그 흔한 저자들의 학력이나 경력에 대한 프로필이 없다. 찾아보면 한 사람 한 사람 다 한 가닥 하는 분들인데~ 그들에겐 아름다운 건강한 작은 교회를 꿈꾸며 기도와 고심 끝에 지었을 사랑하는 교회 이름과 사역자 이름 석자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다. 경기도 양주-강북제일교회(이상대 목사), 경기도 광주-그십자가교회(손연국 목사), 서울 태능-나무교회(홍선경 목사), 경기도 오산-말씀의빛교회(윤용 목사), 인천 논현동-세나무 교회(이진오 목사), 부산 덕천-청운교회(임병열 목사), 대구 범어동-함께하는교회(박창렬 목사)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재편》 이진오 / 비아토르 / 2017 《작은교회운동》 양민철외 30인 지음 / 동연 / 2024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크만 / 복있는 사람 / 2015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5-11-21
  • [영화]얼굴(2025)
    감독 : 연상호 출연 : 박정민(임동환), 권해효(임영규), 신현빈(정영희), 한지현(김수진)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착각 혹은 착시가 있다. 바로 예수님의 얼굴이다. 성화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얼굴은 다 가짜다. 16세기 이후 유럽인들이 르네상스 시대에 자신들의 이상향을 그린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태어나시고 자라셨다. 게다가 그 분은 목수의 일을 하셨다. 그러니 얼굴은 검게 그을렸을 테고 손은 고된 노동으로 거칠었을 것이다. 오죽 하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논쟁하던 중 "네가 오십이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냐?"고 했겠는가? 이사야서는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 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볼 품이 없으셨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외면 당하셨다. 사람들이 그 분을 외면한 이유는 자신들보다 더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아름답고 우람하다. 로마의 황제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황제를 숭배하고 따랐던 이유는 자신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 분은 욕망하고 따를 외모가 아니셨다. 예수님은 올바른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드러내셨다. 위선을 드러내셨다. 사람들이 교묘하게 감추고 있던 마음 속 깊은 욕망을 폭로하셨다. 사람들은 부끄러워 하고 회개하는 대신 폭로자를 제거하려 했다. 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 분이 가르친 내용은 본능과 상반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외면 당하셨다. 연상호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얼굴 뒤에 감추고 산다. 사람들은 잘 생긴 얼굴을 추앙하고 권력이 있는 자들을 욕망한다. 자신들이 되고 싶은 바를 그들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 얼굴 너머에 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겉모습이다. 자신들의 욕망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영규의 독백이 흐른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데 앞을 못 보는 사람도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어." 시각장애인인 영규는 평생 도장을 새겼다. 도장 전각의 장인이 되었다. 그가 입버릇 처럼 말하듯 자신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작품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는 손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영규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외면 당하지만 그 조차 자신의 욕망에는 인정 받고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오래전에 실종된 아내 영희는 얼굴이 없다. 40년 만에 아파트 공사장에서 유골로 나타난 영희는 얼굴이 없다. 장례식을 치르지만 영정 사진이 없다. 그녀는 얼굴이 없다. 영희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증언한다. "너무 못 생겼었어." "추했지. 정말 그렇게 생긴 사람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희는 못난 존재다. 자신들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다. 적어도 영희보다는 나은 존재라는 자기 만족을 줄 수 있는 존재였다. 영규가 영희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규를 무시했지만 영희는 그를 인정해 주었다. 영규는 영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우위에 있다. 영희 앞에서는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다. 영규가 생각할 때에 영희는 자신보다 더 못난 존재였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여자였다. 문제가 생겼다. 영희는 진실을 말하는 여자라는 점이다. 자신이 본 것을 감출 수 없는 사람 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 아버지가 다른 여자랑 한 방에서 바람 피우는 것을 목격했다. 어린 영희가 볼 때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사실을 말했지만 그녀에게 돌아 온 것은 침묵 강요와 아버지의 매질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후 피복 공장에 작업보조로 취직했다. 공장 사람들은 모두 영희를 우습게 여기고 놀려댔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사장이 재단사 여성을 성추행하는 일이 벌어진다. 영희는 이 사실을 항의하러 사장 방에 들린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침묵 강요와 해고 협박이었다. 영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장의 불륜을 폭로한다. 그 대가는? 오히려 성폭행 당한 당사자인 재단사가 영희의 뺨을 때리며 분노를 퍼붓는다. "네가 뭔데? 네 까짓게 뭔데?" 그렇게 영희는 사람들에게서, 공장에서 추방당한다. 추방 당할 뿐 아니라 멸시 받고 제거당 한다. 피해자들이 기분 나빴던 이유는 영희가 진실을 말할 때 자신들보다 영희가 더 돋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무 말 하지 못하는데 나보다 못난 영희는 용기있게 진실을 말한다. 그게 더 기분 나빴다. 나보다 못나야 하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데 그녀가 진실을 말한다. 그래서 더 미움받았다. 유일하게 자신이 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남편 영규에게도 그녀는 버림 받는다. 시각 장애인 영규는 분노하며 말한다. "내가 모를 줄 알아? 너가 못 났다는 것을 모를 줄 알아? 알지만 결혼한거야. 그러니 조용히 지내라고. 응?" 영규가 폭발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희는 나보다 더 못난 존재여야 하고 아무 말 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여야 한다. 그런데 그녀가 진실 앞에서 용기를 가진다. 영규의 분노가 치미는 지점이다. 영화는 욕망의 민낯을 폭로한다. 소위 잘 난 사람들, 돈 있는 사람들, 권력있는 사람들의 위선을 폭로한다. 아니 그들을 욕망하는 못 난 사람들의 위선도 말이다. 오로지 영희만이 진실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로 보는 존재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예수님이 오버랩되었다. 예수님이 버림 받은 이유는 그들의 욕망에 어긋났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과 기대를 이루고자 했다. 그 욕망과 기대가 허물어지자 모두 버려두고 도망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작품들에 유로지비를 등장시킨다. 못난 사람, 천대받는 사람,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사람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진실을 가지고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로 하여금 진실을 마주하게 한 소냐처럼. 백치의 미쉬킨 처럼. 이제 우리의 민낯을 마주할 때다. 번지르한 얼굴 뒤의 진실을 마주할 차례다. 우리의 욕망을 투사한 예수가 아니라 실제의 예수를 마주할 때다. 나의 얼굴은 누구인가? 누구를 드러 내는가? 욕망을 내려놓고 진짜 예수님의 얼굴을 본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 분처럼 진실을 폭로함으로 버림 받을 용기가 있는가? 그 분 앞에서 당신의 얼굴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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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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