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의 달이 다가온다. 사람들은 사랑과 감사의 가치를 다시 떠올린다. 부모의 은혜를 말하고 자녀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저녁이 있는 삶, 삶이 있는 저녁이 소환된다. 이렇듯 각자의 방식으로 가정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가정은 여전히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다.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가 쌓이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오늘의 가정은 여러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다. 가족이 함께 살아도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다. 대화는 점점 줄어들든다. 각자의 스마트폰과 일상 속으로 흩어진다. 부모는 생계와 책임의 무게에 짓눌린다. 자녀는 경쟁과 불안 속에 자라난다. 노년의 부모는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외로움과 싸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속으로는 지쳐 있는 가정이 많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랑할 힘마저 소진된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가정의 아픔이 점점 사적인 문제로만 취급된다는 데 있다. 부부 갈등도, 세대 갈등도, 자녀 문제도, 노인 고립도 각 가정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몫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가정의 위기는 결코 한 집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병리다.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시대의 과제다. 가정을 지탱하던 가치가 약해진다. 관계를 회복하는 기술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술이 앞선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때에 교회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져야 한다.
교회는 단지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아니다. 상처 입은 영혼과 깨어진 관계를 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무너져 가는 가정을 바라보며 훈계만 하는 곳이 아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곳이어야 한다. 가정을 향해 이상만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 현실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들어야 한다. 지친 부모의 한숨을 들어야 한다. 말문을 닫아버린 청소년의 침묵을 들어야 한다. 홀로 남겨진 노인의 적막을 들어야 한다. 교회는 판단보다 공감으로, 지적보다 위로로 다가서야 한다. 또한 교회는 실제적인 돌봄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부부가 함께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부모 교육과 자녀 이해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청년과 청소년이 마음 놓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멘토링 체계를 세울 수 있다. 사별 가정, 독거노인,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을 향한 구체적인 돌봄도 필요하다. 가정의 위기를 개인의 신앙 부족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복음은 깨어진 자를 정죄하는 말이 아니다. 다시 품고 회복하게 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는 가정의 본질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 가정은 성과를 평가하는 곳이 아니다. 조건 없이 받아 주는 자리이다. 가정은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부족한 존재들이 용서와 인내를 배우는 자리이다. 가정은 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돌아와 숨을 고르는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바로 그런 가정이 되도록 돕는 영적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가정의 달을 맞으며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 가정은 서로에게 안식이 되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지친 가정을 살리는 품이 되고 있는가. 행사와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회복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흔들린다. 가정이 살아야 교회도 산다.
그러므로 오늘 교회는 시대의 가정 앞에 더 깊은 책임감으로 서야 한다. 축하의 말에 머물지 말고, 회복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가정의 달은 기념의 시간이기 전에, 다시 사랑을 배워야 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