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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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를 추앙(?)하는 칸영화제

대한민국이 영화를 잘 만들고 대한민국 영화가 재미있다는 얘기는 소문이 아니라 사실임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지난 5월 17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감독상을 받았고, 영화 <브로커>(Broker)에서 주연을 맡은 송강호 배우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100년의 영화 역사상 칸국제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두 개를 받은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칸국제영화제는 같은 작품에 두 개의 상을 주는 일이 없는 까닭에 어떤 상이든 받기만 한다면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만 가지고도 대단한 영화라는 인정을 받는다. 왜냐하면 칸영화제는 전세계에서 출품한 2천 편이 넘는 영화 가운데서 단지 20편 내외의 작품을 선정하여 경쟁부문에 올리고 거기서 상 받을 영화와 배우들을 뽑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 3대 영화제를 거론하며 다른 국제영화제들도 많은데 굳이 칸영화제에서 상 받은 것을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 게 아니냐 하며 겸손하라는 뜻을 비추기도 한다. 현대의 영화들이 다국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또한 한국 영화가 발전하기까지 영화 선진국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영화가 세계 최고라는 교만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칸영화제가 바라보는 한국 영화의 위상이 예전과 다르게 ‘추앙’하는 현실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칸영화제가 보수적이라는 비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 위상만큼은 가히 절대적이다. 세계에는 칸영화제 말고도 베를린영화제나 베니스 영화제 같은 유명영화제들이 더 있다. 그러나 규모나 작품의 숫자, 세계영화계에 주는 영향력을 비교한다면 칸영화제에 견줄만한 영화제는 그 어디에도 없다. 마치 영화계의 노벨상 같다고나 할까.

 이번 칸영화제는 경쟁 부문 뿐만 아니라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한국 영화들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배우로서 활동해오던 이정재 배우가 첫 연출을 맡은 감독 데뷔작 <헌트>(Hunt)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박수갈채를 받으며 시사에 성공했다. 칸영화제의 메인 상영관이자 가장 많은 객석인 3천 석을 보유한 뤼미에르 극장을 배당받은 <헌트>는 전회 매진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젊은 감독들의 약진 또한 대단했다. 정주리 감독은 신작 <다음 소희>로 국제비평가주간 폐막작 상영의 영광을 안았고, 문수진 감독의 <각질>은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진출한 9개 영화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칸영화제 극장 밖의 한국 영화 열풍은 더욱 뜨거웠다.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을 포함하여 각국의 유명 영화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들고나와서 팔고, 또 영화 수입업자들 또한 흥행이 예상될만한 영화들을 찾아 촉각을 세우며 거래하는 영화시장이 서는 데 여기서도 한국 영화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외에도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과 신연식 감독의 <카시오페아>를 포함하여 16개 작품이 마켓에서 주목할 만한 한국 영화로 현지 언론들은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올해 칸영화제에선 어디를 가도 한국 영화가 있었다. 이것을 현지 언론들은 ‘K-칸’(Korea-Cannes)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지켜 본 한국영화 발전의 역설

칸영화제와 한국인들이 유달리 사랑하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가족영화 <브로커>(Booker)가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일은 새로운 영화의 트렌드 속에서 한국 영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즉 한국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이면서 세계화된 속성을 영화 <브로커>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첫째는 국경을 초월하는 현대 영화 제작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감독은 일본 사람이지만 배우들과 제작사는 모두 한국 국적이다.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송강호를 비롯하여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이지은) 등의 주연급 뿐만아니라 송새벽, 김선영, 이동휘, 박해준 등 한국영화계의 명품 배우들이 단역을 마다하지 않고 총출동하여 보는 즐거움과 작품의 질을 높였다. 이는 물론 고레에다 히로카즈라고 하는 세계적인 연출가와 함께 한다는 의미도 개인적으로 컸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제작과 배급은 한국 최고의 영화투자사 CJ ENM이 맡았다.

 둘째는 국경을 초월한 최고의 조합을 보여주었다. <브로커>의 장르는 가족영화다. 그런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영화를 통해서만 칸영화제에서 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 2013)로 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데 이어서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2018)은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을 통해 소시민적인 아버지 연기의 달인으로 평가받은 명배우다. 거기다 입양 사기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가족영화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점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세계영화계의 흐름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셋째는 국경을 초월하여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인간애라는 주제가 통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손에서 버려지는 영아들과 갓난아기를 해외에 입양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한국사회의 불행과 고난의 역사를 담고 있다. 6.25 전쟁고아들을 해외로 입양시켜야 하는 빈곤의 상황은 한국 역사가 낳은 비극이지만 영화의 좋은 이야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버려지는 아기들이 있고, 이들의 생명을 어떻게든 구하고 건강하게 성장시키려는 교회와 기관의 존재는 급속한 사회변화를 겪는 한국 사회의 난제를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적으로는 흥미있는 이야기를 제공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한국의 고난과 불행의 역사와 사회상은 한국 영화를 발전시키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되었음을 보게 된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영화 <브로커>는 채무에 시달리는 상현(송강호)과 보육원 출신으로 교회의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수(강동원)가 몰래 협작하여 유기된 아기들을 양부모에게 연결시켜주고 돈을 받는 입양 브로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브로커의 실상을 알아버린 아이의 엄마 소영(아이유)이 나타나고 이들을 뒤쫓는 형사들(배두나, 이주영)이 가세하면서 이야기는 얽히고설키기 시작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여느 가족영화에 비해서 이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 역시 범죄자를 쫓는 형사물의 특성을 결합시킨 까닭이다.

 영화는 진정한 가족애를 인식시키기 위해 ‘동시 대조 효과(The Effect of Simultaneous Contrast)’를 활용한다. ‘동시 대조 효과’란 사람들이 색을 인식할 때 비슷한 색보다는 다른 색에 둘러싸여 있을 때 그 경계 부분에서 가장 크게 인식한다는 이론이다. <브로커>는 객관적으로 보자면 불법입양 범죄자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들이 점점 가족애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건강하고 이상적인 가족 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색깔에 둘러싸여 있을 때 가족의 중요한 가치인 생명성은 단연 빛나게 되는 법이다.

 따라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대신에 ‘무엇이 가족인지’를 새롭게 인식시켜 온 감독의 주제의식은 <브로커>에서도 여지 없이 들어난다. 가족의 가치에 대한 뻔한 대답이 아니라 의식의 전환을 통해 가족의 본질을 물으려는 감독의 의도는 이번 영화에도 계속된다.

 브로커들과 소영은 아이를 불법 입양시키는 과정에서 함께 차를 타고 움직이며 마치 가족처럼 행세한다. 아니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가족애를 느끼며 생명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다.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들이 가족에 대해 깨달은 것은 바로 생명성이었다.

 <브로커>에서 불법 입양 조직을 뒤쫓는 형사 수진(배두나)은 처음에는 아이를 버리는 엄마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도대체 아이는 왜 낳는 거야!” 어찌 보면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안되는 미혼모를 포함한 영아유기의 현실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소영(아이유)는 이에 대해 이렇게 반문한다. “낳기 전에 죽이는 게,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벼워?” 정말 뼈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낙태 합법화에 따른 논쟁이 여전히 사회문제로 남아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 영화는 정말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출산과 입양은 기본적으로 생명성에 대한 존중의 가치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비록 형편이 어렵지만 아이를 낳는 엄마의 마음에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마음 속 깊이 배어있다. 영화 속에서 불법적인 입앙 행위를 일삼는 브로커지만 그들에게 생명은 가족을 연계시키는 의미있는 가치로 와닿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 역시 생명성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모두 불법자들이지만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살아줘서 고마워!”

 적어도 가족은 살아서 함께 있다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해야 하지 않을까? 생명이 절대적 가치를 지녀야 함을 우리는 잊고 산 것이 아닐까? 생명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어야 함(잠9:6)은 성경에 바탕을 둔 절대적 가치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강진구 교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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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K-칸’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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