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류열풍 속 K-기독교 영화를 꿈꾸다
김상철 감독의 ‘아버지의 마음’
한류열풍과 기독교 정신
한류문화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본과 동남아시아 위주로 불었던 한류열풍이 아니라 유럽과 북남미를 비롯하여 아프리카와 중동지방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할 만큼 그 영향권 또한 세계적이다. 한류 문화의 내용 또한 몇몇 대중가수나 드라마에 국한된 지난날과 달리 매운맛 라면에서 K9자주포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한류문화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음악만 하더라도 클래식에서 퓨전국악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노래와 춤을 즐기는 데 현대와 고전 가리지 않는다.
어떻게 세계에 한국문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는지 한국인조차 놀랄 정도다. 새로운 한류의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아래 감춰진 한국인의 문화유전자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화여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쳐 온 최준식 교수는 한류문화를 발전시켜 온 한국인의 특성을 문(文)과 신(神)에서 찾았다. ‘문’은 학문을 좋아하고 한국인의 성향을 뜻한다. 서양의 문화혁명을 일으킨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1445) 보다 금속활자로 인쇄한 고려의 직지심체요절(1377)이 빠르고, 인류 최초로 생일을 가진 문자인 ‘한글’(1443)을 만든 일 등은 한국인이 ‘문’을 좋아하는 기질적 특성을 보여준다.
최준식 교수가 말하는 한류열풍을 일으킨 한국인의 또 한가지 특성인 신(神)은 한국인의 가장 오래된 종교적 성향인 샤마니즘, 즉 무교적 성향을 말한다. ‘신명난다’는 말은 무엇에라도 홀린 듯 한마음 한뜻을 이루어 외국인이라면 감히 생각지도 못한 일을 이뤄내는 한민족의 성향을 말한다.
돈이나 기술, 시설 등 아무것도 갖춰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거북선이 그려진 5백원 지폐를 들고 영국의 투자자를 찾아가 마침내 세계최대의 조선사를 일으킨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 같은 사람은 ‘신명’나게 일을 한 사람이었다. BTS와 블랙핑크, 백남준과 임윤찬, 김연아와 손흥민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한류문화의 주인공들에게서 우리는 신명나게 몰입하는 한국인들만의 기질적 특성을 읽을 수 있다.
신(神)에 대한 최준식 교수의 해석과 적용에 백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은 종교박람회장이라 부를 만큼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지 않았는가! 대신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기독교가 나라와 민족을 부흥 발전시킨 원동력의 역할을 해왔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기독교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내한한 이후부터 한민족의 문화역량을 발전시킨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오늘날 문화 유전자적 요소인 신(神)은 샤머니즘이 아닌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입각해서 검약과 절제, 저축의 정신을 키웠고, 신분차별을 폐지하고 서구식의 근대교육의 길을 연 것도, 민주주의제도를 정착시킨 것도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 덕분이다. 특히 세상을 보는 시각을 자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를 바라보도록 시선을 넓힌 일은 한국교회와 기독교 정신이 한류문화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영화 <아버지의 마음>은 이 사실을 감동적으로 깨우치게 만든다.
우리에겐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가?
7월 개봉을 앞둔 김상철 감독의 신작 <아버지의 마음>(2023)은 미국의 기독교 영화시장 진출을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지금까지 미국 극장에서 상영된 한국의 기독교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재미교포들이나 한인 후손들로 대개의 경우 한인교회를 대상으로 한 홍보의 결과였다. 김상철 감독이 원하는 바는 외국의 영화상영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외국의 기독교인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즉 주목할 만한 기독교 영화로 인정받아서 소니나 디즈니 같은 메이저 영화사들이 갖고 있는 배급 경로를 따라 미국의 기독교 영화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의지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에게는 빈곤아동구호단체인 ‘컴패션(Compassion)’의 설립자 에버렛 스완슨(Everette Swanson, 1913~1965) 목사와 컴패션의 후원자와 결연을 맺은 아동들의 성장한 일화를 보여주는 선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의 절반은 한국전쟁 당시 비참한 고아들의 실상과 선교사로 내한한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What are you going to do?)’주님의 음성을 듣고 전쟁고아들을 돌보기로 결심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1952년 컴패션은 시작되고 폐허가 된 상황에서 국가도 하지 못했던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사역을 소개한다.
영화의 또 다른 절반은 현재의 시점에서 컴패션을 후원하는 인플루언서 황태환과 그와 결연을 맺은 필리핀의 엄마를 잃은 소녀 나탈리, 그리고 컴패션의 도움으로 르완다 내전의 대학살을 견디고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메소드 등 에버렛 스완슨 선교사의 사역의 열매들을 영화는 제시한다.
특히 유튜브 채널 ‘비글부부(Bgeul Bubu)’를 운영하며 유명해진 ‘하준파파(황태환)’의 출연은 이 영화의 제목인 ‘아버지의 마음’을 매우 감동적으로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다복하기만 한 이 가정의 6개월 된 둘째 아이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인해 하늘나라로 가버린 상황에서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세바시’에 녹화된 딸을 잃은 아버지 황태환의 마음은 이러했다.
아빠가 너의 죽음이
그냥 죽음이 아닌 희생이었다는 것을
반드시 증명시켜줄게.
너가 그냥 왔다간 것이 아니라,
너는 분명히 너의 사명을
끝냈다라는 것을
아버지의 인생을 통해서 반드시 보여줄게.
관객들은 황태환이 먼저 간 어린 딸과의 약속을 컴패션을 통해 지키고 있음을 바라볼 수 있다. 딸을 잃기 전만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었던 컴패션의 사역은 이제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딸을 잃어버린 아픔은 부모가 없는 고아들의 처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헨리 나우웬이 얘기한 ‘상처입은 치유자(Woonded Healer)’처럼 자신이 입은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역할, 즉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자신이 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첫 번째 K-기독교 영화를 꿈꾸다
김상철 감독은 미국의 기독교 영화 시장에 진출하는 첫 한국인 감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 기획의 단계부터 미국영화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하나님이 새롭게 주신 소명으로 인식하며 제작을 해왔기 때문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완슨 선교사와 컴패션을 알게 되었고, 스완슨 선교사의 전기를 쓰는 작가와 주변 인물들이 영화처럼 나타났으니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서 황태환 출연자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용하는 언어도 영어가 주를 이룬다. 영화 흥행에 있어서 언어의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문화가 다른 대중들에게 영화의 언어가 모국어인지 아니면 외국어인지는 파급 효과면에서 차이가 있다. 내레이션 또한 해외 상영물의 경우 할리웃의 유명 배우를 섭외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미션 임파서블7>과 마블 시리즈 등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급 영화에서 항공촬영을 담당한 스티븐 오가 스탭으로 참여하여 메이저급의 영상을 제공한 면도 영상미를 높이며 높아진 대중의 눈높이에 부응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세대와 문화를 초월한 선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은 이 영화가 대박이 나더라도 국뽕에 취할 염려를 갖지 않게 만든다. 빈곤과 고통에 빠진 어린이들과 결연을 맺고 아빠처럼 엄마처럼 돕는 일은 세계 구석구석 영화가 개봉되는 곳마다 오히려 확산될 필요가 있다. 전쟁의 처절한 상처를 보듬고 일어나 아버지의 마음으로 세상의 어린이들을 품는 영화를 보는 일은 자기만족이 아닌 이웃 사랑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을 기준으로 전국에는 414개의 고아원 시설이 있었다. 이 가운데 기독교 계통의 선교사와 후원단체가 운영하는 고아원의 수가 266개 시설에 이르렀고, 이곳에는 28,748명의 고아들이 돌봄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미국의 선교사들은 미군의 협조와 본국의 교회와 긴밀히 연계하면서 다른 단체들보다도 더 많은 구호 물품과 재정, 구호 인원들을 통해 구호활동에 나섰다.
한국의 컴패션은 1952년 스완슨 목사가 전쟁고아들을 향한 간절한 사랑으로 시작되었지만, 2003년부터 한국의 컴패션은 수혜를 받는 국가에서 후원을 베푸는 국가로 전환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기독교 한류가 번쩍하는 스파크를 일으키는 순간이다. 유엔 가입국 가운데 역사상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에 원조를 주는 유일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연 <아버지의 마음>은 최초의 K-기독교 영화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한 팁이 있다면, 모든 한류문화 대열에 편승한 콘텐츠들은 일단 국내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개봉되는 7월 뜨거운 극장가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승부수를 띄운 <아버지의 마음>의 성공여부는 우리들 손에 달려있다.